'유명한 포커꾼이 카지노에서 게임 도중 갑자기 사망한다. 수사대는 안약에 든 테트라하이드로졸린이란 혈관수축제가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고 술에 안약을 떨어뜨린 여종업원을 의심하지만 실제 사인은 사망자가 습관적으로 먹던 초코볼 속 납이 몸 안에 축적됐기 때문으로 밝혀진다.'(과학수사대(CSI)중 '포커천재의 죽음'편) 오염물질로 배출된 납이 땅에 스며들었다 코코넛나무에 흡수된 결과 초코볼에도 포함됐는데 수십년동안 먹는 바람에 치사량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영화 내용이긴 하지만 실제 식품에 든 유해성분은 이처럼 극소량이라도 장기간 체내에 축적되면 부작용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고 한다. 1962년생 남성들의 평균 정자수(정액 1㎖당 5천1백만 마리)가 45년생(1억2백만 마리)의 절반밖에 안되는 건 다이옥신이나 DES같은 환경호르몬 탓이라는 보고도 있다. ('도둑맞은 미래'ㆍStolen Future,테오 콜본 외) 공기나 땅에 든 것도 위험하기 짝이 없고 따라서 농약 사용이나 오염물질 배출도 '간접살인'이나 다름없다고 하는 판에 국내에선 먹거리 재배나 가공ㆍ처리에 유해물질을 사용하는,이른바 식품 테러가 그치지 않는다. 근래에만 해도 2000년 여름엔 납 꽃게,지난 5월엔 구두광택재(슈단)를 섞은 고춧가루를 판매한 일당이 잡힌데 이어 며칠 전엔 횟감용 한치 등을 공업용 이산화염소로 소독한 일당이 적발됐다. 식품 테러가 근절되지 않는 건 무엇보다 '돈이면 무슨 짓이든 하는' 상술 탓이지만 표를 의식한 자치단체의 느슨한 단속과 허술한 관리체계,화학물질에 대한 인식 부족도 주요인으로 꼽힌다. 지자제 실시 이후 단속건수가 줄고,폐수처리용 황산알루미늄을 탄 물에 도라지를 담그고도 "문제인 줄 몰랐다. 재수 없어 걸렸다"고 했다는 게 그것이다. 위해식품 제조 판매자의 신상을 미성년자 대상 성매매 행위자의 경우처럼 공개하자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는 소식이다. 위해식품용 화학품은 대부분 발암 추정물질인데다 기형아 출산의 원인일 수도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간접살인이라는 말이 결코 과하지 않은 셈이다. 당장 무슨 일이 안생긴다고 대충 넘어갈 게 아니라 다시는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차제에 법안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 소비자 스스로 두 눈 크게 뜨고 감시,고발해야 함도 물론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