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산업스파이 색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국정원의 전신이었던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등이 워낙 정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정원은 지난 96년부터 산업보안 활동을 주요 방첩업무의 하나로 놓고 기업들과 상당히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놓고 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올해 국정원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산업보안 활동을 대폭 강화하라"고 지시해 관련 인력을 두배로 늘려놓았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등의 국가정보기관들도 경제전쟁 시대를 맞아 산업보안 업무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때로는 이들 정보기관이 상대국의 산업스파이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국내 방첩활동 국정원은 산업기밀 보호상담센터를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국번없이 111을 누르거나 인터넷 홈페이지(www.nis.go.kr)의 산업보안 코너를 이용하면 된다. 국정원의 산업스파이 색출 작전은 영화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첩보 또는 국내외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산업기밀 유출 정황이 드러나면 즉시 조사에 착수해 증거자료를 수집한다. 정식 수사권이 없어 당사자를 소환할 수 없는 것이 한계지만 법이 허용한 테두리 내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설명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자체 첩보를 통한 사전 인지도 중요하지만 내부 제보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다"며 "관련 기업이나 인물들의 신상은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전 러시아 유치과학자의 벤처기업 기술 유출사건을 국정원이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보면 그 양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 ◆ '침투'와 '유인' 러시아 모스크바 공과대학에서 레이저 분야를 연구하던 유라는 동료들이 외국업체에 취업해 고임금을 받는 것을 보고 국내 벤처기업 P사에 취업했다. 그는 당시 국가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하던 '열추적 화상분석 장치' 관련 연구업무를 맡게 됐다. 유라는 이 연구가 완성단계에 이르자 회사에 연봉 인상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개발기술을 빼내기로 결심했다. 연구개발을 핑계로 여러 차례 야근을 하면서 기술자료를 빼돌린 그는 해외 경쟁업체에 판매를 시도했다. 낌새를 알아차린 P사는 국정원에 이같은 사실을 알렸고 이 때부터 국정원의 '공작'이 시작됐다. 국정원은 요원 한 명을 사업가로 위장시켜 유라 부인에게 러시아어 과외를 받는 수강생으로 접근시켰다. 동시에 유라가 숙소에서 1백m 가량 떨어진 곳에 별도의 숙소를 얻어 이곳에서 기밀유출에 필요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정원은 이 요원이 휴일에 유라 가족들과 함께 인천 송도유원지로 놀러가도록 유인한 뒤 임시 숙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회사 기술자료가 보관된 다량의 디스켓이 발견됐음은 물론이다. 국정원은 유라를 긴급 체포했지만 당시 정부의 러시아 과학자 유치정책 등을 감안해 관련자료를 압수한 뒤 강제 출국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 [ 제보를 받습니다 ] 한국경제신문은 '비상! 산업스파이' 시리즈를 게재하면서 산업스파이로부터 피해를 입은 기업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는 산업부 대기업팀(전화 02-360-4269 또는 powerpro@hankyung.net)으로 연락바랍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