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산업스파이] <1> '수십조원 기술정보가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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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하지 못한다."
오래 전부터 군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겨온 이 격언은 기업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케팅이나 재무전략의 실패는 다시 만회할 기회가 있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도 있다.
하지만 핵심기밀 유출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타격을 해당 기업에 안겨다 준다.
노출은 순간이지만 많은 돈을 들여 수년간에 걸쳐 확보한 비교우위는 허망하게 사라진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이승철 조사본부장은 "주요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이 본격화되고 해외 인력들의 스카우트도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산업기밀의 외부 노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상시 구조조정으로 내부 직원들의 신분이 불안해진 것도 산업스파이가 암약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단 한명에 유린당한 첨단기술
PDP(플라자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업체인 A사는 지난 10월 신기술 발표를 앞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이 기술이 대만의 경쟁업체로 넘어갈 뻔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A사는 첨단 보안시스템으로 무장하고 있던 터.
하지만 회사 인사에 불만을 품은 관련기술 품질담당 간부 B씨가 외부 유혹에 넘어가면서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개발비용 3천7백억원을 포함해 총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이 기술의 가치는 '단돈 32억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넉달간에 걸쳐 기술자료를 모으는데 성공한 B씨는 관련 디스켓을 대만에 넘겨주기 직전 국정원의 첩보를 넘겨받은 검찰에 검거됐다.
A사 관계자는 "국정원으로부터 관련 소식을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전 임직원이 보안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IT(정보통신) 업종에 집중
국정원이 분석한 분야별 산업스파이 사건을 분석해 보면 정보통신과 전기전자 업종이 전체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신기술 개발속도가 빨라지고 국제시장의 경쟁도 더욱 첨예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두드러지는 경향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한국산 휴대폰이 산업 스파이들의 주요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월 적발된 휴대폰 핵심기술 유출사건이 대표적이다.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인 C사의 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윤모씨는 C사에 휴대폰 충전기 소재를 납품하고 있던 D사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윤씨는 지난해 10월께 D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카이로텍을 설립, 자신의 부하직원을 대표이사로 앉혔다.
윤씨는 회사의 진용이 갖춰지자 지난해 12월말 C사가 중국에 수출하기 위해 개발한 휴대폰 모델의 운영 소프트웨어를 CD에 복사해 카이로텍에 넘겨주었다.
윤씨는 (주)카이로텍에서 개발 중인 중국 수출용 휴대폰에 부품이 급히 필요하자 C사의 생산본부 구매팀에 핵심 부품들을 음성적으로 반출토록 요청해 성사시켰다.
윤씨는 C사 외에 국내 동종업체의 기술정보도 수집해 카이로텍에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20년 이상 회사에 근무해와 회사의 기밀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중역이 범행을 주도했다는 측면에서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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