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은 1979년 7월 권력을 거머쥔 후 지난 4월 바그다드 함락과 함께 권좌에서 축출될 때까지 24년간 이라크를 철권으로 통치해왔다. 이번에 그가 체포된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1937년 4월 태어난 그는 올해 66세.아랍어로 '맞서는 자' '충돌하는 자'라는 뜻의 '사담'이라는 이름대로 그는 지난 68년 자신이 속한 바트당의 무혈 쿠데타를 성공으로 이끌며 제2의 권력자로 부상했다. 그는 73년 석유 국유화 성공과 지휘하의 보안군 세력을 바탕으로 절대적인 권력기반을 확보했다. 후세인은 이라크 선진화를 통한 '아랍의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목표로 삼아 문맹 퇴치 등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무리수도 뒀지만 70년대 후반만 해도 이라크를 보건·교육 등 사회 기반 면에서 중동에서 가장 선진국가로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이란-이라크전쟁, 90년 쿠웨이트 침공 등을 주도하며 미국 등 서방국가들로부터 '독재자'의 악명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국내정치 면에서 수천명의 반대세력을 처형하고 강압적이고 무자비한 보안군을 동원, 해외망명 세력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암살을 자행하는 등 공포정치로 더욱 미움을 샀다. 특히 90년대 전후해서는 아들인 우다이와 쿠사이간에 권력 후계를 둘러싼 암투가 진행되면서 전형적인 세습독재의 길을 걸었다. 더욱이 91년 유엔의 경제제재는 이라크 경제와 국민에게 심대한 타격을 줬고 이로 인해 그의 독재체제는 급속히 와해됐다. 그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가 지난 7월 모술 은거지를 급습한 미군에 의해 사살된 데 이어 후세인 본인이 체포됨으로써 미국에 의해 알카에다에 맞먹는 국제 테러지원 세력으로 꼽혀온 후세인 세력은 주요 구심점을 모두 상실, 사실상 붕괴를 맞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