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컬하게도 크리스마스는 "솔로"들에게 현충일과 다름없다. 짝없이 맞는 크리스마스는 여느 날보다 더욱 쓸쓸하고 허전하다. 이건동 감독의 데뷔영화 "해피에로크리스마스"(제작 튜브픽쳐스)는 크리스마스에 연인을 만들어 섹스를 하려는 "솔로"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가장 성(聖)스런날에 꿈꾸는 가장 속(俗)스런 욕망에 대한 탐사인 셈이다. 배경은 여관과 호텔들이 밀집해 있는 충남 유성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늘 남자에게 차이는 허민경(김선아)을 두고 초보 순경 성병기(차태현)와 건달 보스 방석두(박영규)가 맞대결한다. 에로영화 제작자,음담패설에 능통한 노동출,소개팅으로 첫 여자를 사귄 순진남 조동관 등 주변 인물들도 연인 사냥에 여념없다. 크리스마스는 이처럼 모든 이들이 '특별한 것'을 꿈꾸는 날이다. 특별함이란 주로 성(性)과 관련돼 있다.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거나 군고구마를 남성의 성기처럼 깎고 여성이 삶은 달걀을 입에 넣어 껍질만 깐 채 다시 꺼내거나 벗은 마네킹의 둔부를 만진다. 또 에로영화 촬영장을 몰래 엿보다가 들켜 도망치기도 한다. 영화의 두가지 속성인 '엿보기'와 '관음주의'가 전편에 배치돼 있다. 허민경과 두 남자의 관계도 '가래뱉기'나 '구토하기' 등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행위를 들킴으로써 맺어진다. 일종의 속내를 꺼내 보이는 행위로 그들간의 관계가 '플라토닉'보다는 '에로틱'할 것임을 내비치는 장면이다. 민경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순한 양으로 변한 방석두 역의 박영규는 능청스러운 연기로 화면을 장악한다. 다른 캐릭터들도 과장되지 않은 절제된 연기로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러나 강렬한 감동이나 자연스런 웃음은 부족하다. 인물들의 행위나 감정흐름이 산만하고 복선 활용도 충분치 않다. 가령 초반부에 성병기는 쌍절곤을 휘두르지만 후반부에서는 방석두에게 뭇매를 맞으면서도 쌍절곤이 등장하지 않는다. 17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