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植 < 중앙대 대학원장.경제학 > 지난 9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의 금융중심지였지만 지금은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유럽의 금융허브를 꿈꾸며 유럽중앙은행을 유치하는 등 영국의 런던을 넘보던 꿈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경제 침체,높은 세율,고임금과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 글로벌화하는 세계금융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다. 동북아 금융중심지가 되기 위한 행로는 험난하다. 서울의 모든 여건이 싱가포르 홍콩 도쿄는 물론 중국 상하이에도 뒤져 있다. 서울이 '금융허브 경쟁'에서 이기려면 이들 경쟁도시가 지닌 비교우위를 뛰어넘어야 한다. 생산설비를 이전해야 하는 제조업과는 달리 금융업은 사람과 컴퓨터만 옮기면 되기 때문에 금융기반과 여건이 잘 갖추어지지 않으면 오지도 않고 쉽게 떠나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의 교훈이다. 한국투자공사(이하 투자공사) 설립이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의 중심이 되고 있다. 외국의 유명한 자산운용회사들을 국내에 유치해 보자는 계획이다.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외국 자산운용사의 입장에서는 외화자산을 위탁받는다는 유인보다 지정학적 안정성,조세제도,정치안정,노사관계,자유로운 영업활동 등이 핵심 고려사항일 것이다. 더구나 투자공사는 국내 자산시장과 연관성이 적은 외화자산의 운용기관이며 운용자산이 모두 미국 유럽 등 해외시장에서 운용되기 때문에 국내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규제완화와 금융감독체계의 개편 등 금융환경의 개선부터 서둘러야 한다. 한은의 외환보유액을 투자공사의 재원으로 사용하겠다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외환이 바닥나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지가 불과 6년 전이다. 외환보유액이 많아서 마치 운용에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논란을 벌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최소한의 외환 보유기준(minimum benchmark)은 설정할 수 있을지라도 '적정 외환보유액'에 대한 기준은 학자마다 다르고 정립된 이론도 없는 실정이다. 특히 미국 등이 최근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액이 과다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환율절상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미국계 컨설팅회사들까지 합세하여 적정 외환보유액이 어떠니 하면서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한은의 보유 외환은 대규모의 외자유출 등 위기상황에 즉시 인출할 수 있는 국가비상금이다.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국가는 국가안전 차원에서 대외 경제규모 확대에 상응하여 외환보유액이 증대되어야 한다. 외환보유액은 어떤 한 시점에서 평가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그 변동을 수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싱가포르 정부투자공사의 재원은 재정잉여기금과 연금자금으로 대부분 구성되었다. 주된 업무는 국가 잉여자산의 관리이지 외환보유액이 아니다. 중앙은행 역할을 하고 있는 통화청(MAS)이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정부투자공사에 위탁하여 주식투자를 하고 있으나 엄격한 운용지침을 주어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어떤 정책을 입안할 때 항상 위원회나 새로운 기구부터 만들려는 발상부터 고쳐야 한다. 기존의 제도나 기구를 잘 활용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외환보유액이 한국보다 훨씬 많은 일본 중국 대만도 외환보유액 운용을 위한 별도 조직을 두고 있지 않고 중앙은행이 관리하고 있다. 그 이유는 화폐를 발행해서 외환을 매입한 주체가 중앙은행이기 때문에 자기 책임 하에 운영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에서다. 현재 한은의 외화자산운용 능력은 국제 투자은행들의 기준 수익률을 상회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산의 일부는 외국의 유수한 투자은행에 위탁 운용하고 있다. 만약 투자공사를 설립한다면 재원의 일부는 10년 이상 장기국채를 발행하여 조달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채권시장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우리 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달러가 좀 쌓였다고 조급하게 대응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dskim@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