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금융 중심지인 코너트가 센트럴.빽빽이 늘어선 초고층 건물엔 HSBC UBS 스탠다드차타드 모건스탠리 등 주로 외국계 금융사의 아시아본부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 외국계 금융회사는 상업은행 투자은행(IB) 주식중개 자산운용 등 홍콩 금융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홍콩에서 주식 및 선물 매매를 하고 있는 증권사는 5백7개사.그러나 20여개의 외국계사가 전체 주식거래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계 증권사는 3백여개가 넘지만 1,2개의 영업점만 갖고 있는 소규모 회사가 대부분이다. 단순 주식중개 업무에서 탈피하지 못한 결과다. ◆주식 중개만으론 생존에 한계 홍콩증권거래소에는 팩시밀리와 계산기를 앞에 둔 중개인들이 많이 보인다. 이들은 모두 별도 점포 없이 개인투자자들을 상대로 주식 중개를 하는 개인사업자들이라는 게 거래소측 설명이다. 화교계 증권사들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 사라진 뒤 나타난 새로운 풍속도다. HG아시아 케리그룹 김&엥 KGI 등 중국계 증권사는 대부분 증권사업을 접거나 외국계에 합병됐다. 중소형사 가운데는 부도를 낸 곳도 적지 않다. 홍콩증권거래소 스콧 샙 시장관리팀장은 "외환위기 이후 시장이 축소되고 수수료가 인하되면서 많은 증권사들이 경쟁력을 잃어 대거 철수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화나 전문화에 성공한 회사만 살아남고 위탁매매(브로커리지)만 고수하던 회사들은 외국계의 인수대상도 되지 못해 퇴출된 곳도 많다"고 설명했다. 현지 증권사로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리포(Lippo)뱅크가 유일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외국계에 시장 내줘 홍콩은 97년을 전후해 최근 한국과 유사한 금융시장의 혼란을 경험했다. LG투자증권 목석균 홍콩법인장은 "홍콩에서도 신용카드 남발로 가계 채무가 증가하고 개인의 증시 비중이 줄어들면서 수수료 급락과 거래량 감소현상이 빚어져 프라이빗뱅킹 위주의 시장 개편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저금리시대로 접어들면서 덩치가 커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으로 대형화와 짝짓기 등이 붐을 이뤘다. 한국은행 이상광 홍콩사무소장은 "수익성 악화로 일부 증권사들은 홍콩을 떠나 중국 선전 등으로 옮겨갔고 HSBC 스탠다드차타드 등이 급부상했다"며 "대형 외국계 금융사들은 현지 증권사 및 투자은행 등과 합병해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자리잡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홍콩의 토종 증권사들이 사라진 이유로 △개인 비중 감소로 수익성 악화 △종합 금융서비스를 위한 대형화 필요성 △새로운 수익원 창출 실패 등을 꼽았다. UBS 아시아 금융분석가인 존 웨들은 "홍콩 증권사들은 재무적으로 취약해 외국계 대형사와의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유로운 홍콩시장의 분위기는 한국과 많이 다르지만 금융사의 재무 건전성이 존망을 좌우했다는 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