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사의 내년 춘투가 사실상 시작됐다. 춘투는 일본 노사간 임금협상 방식을 가리키는 말로 매년 봄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 등의 실력행사를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말이다. 내년 춘투는 니혼게이단렌(日本經團連)이 16일 이사회를 열어 경영자측의 교섭지침이 될 `경영노동정책위원회 보고'를 승인하는 것으로 막이 올랐다. 게이단렌은 보고에서 작년에 `동결 또는 폐지도 있을 수 있다'고 했던 연공급성격의 `정기승급제도'에 대해 "폐지와 축소도 노사협상 대상"이라고 규정했다. 또 `임금 일률인상은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던 작년 지침을 더욱 강화해 "임금일률인하"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매년 누구나 급여가 오르는 제도를 고쳐 앞으로는 급여삭감도 할 수 있는 제도의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보고는 `총인건비 관리 철저'와 `임금수준의 적정화 및 연공형 임금탈피'를 내년 춘투의 과제로 제시해 근로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노조의 투쟁의지는 허약하기만 하다. 전국 노조연합체인 렌고(連合)는 "가처분 소득이 5년 연속 감소해 근로자의 생활이 한계에 도달했다"며 울상이지만 임금인상 요구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장기침체에 따른 구조조정 등으로 고용유지와 적어도 임금동결을 목표로 해야 하는처지다. 내년 춘투 목표 자체가 정기승급 확보다. 렌고는 내년 춘투에서 3년 연속 임금일률인상 요구를 포기하는 대신 삭감만은 어떻게든 막아 보겠다는 입장이다. 철강노련과 조선중기노련, 비철금속노조연합 등이 통합해 지난 가을 출범한 기간노련은 이미 임금 일률인상요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지하철 노조를 비롯한 주요 공공노조의 일제파업으로 며칠씩 교통수단을 비롯한 산업활동을 마비시켜 경영계를 굴복시키곤 하던 한창때의 위세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넘어 애처로울 정도다. 임금삭감을 포함한 게이단렌의 지침이 강행되면 "개인소비가 위축돼 디플레가 더 심화될 것"이라며 일본 경제 전체에 미칠 악영향을 호소하는게 고작이다. 게이단렌 지침은 연공형 임금에 대해 "중고년층의 임금수준을 높여놓아 원활한 노동이동을 방해하고 있다"면서 "연령, 근속연수 등의 요소를 배제하고 능력과 성과에 따른 임금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히타치(日立)가 정기승호분에 해당하는 연공급을 이미 폐지키로 했고 마쓰시타(松下)전기도 연령급을 폐지키로 했다. 소니는 과장급 이하 일반사원에게도 가족수당과 주택수당을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 게이단렌의 조사에 따르면 160개 주요 회원사 가운데 올해 춘투에서 임금 일률인상을 하지 않은 기업이 95%나 됐다. 업종별로 주요 노조가 보조를 맞춰 임금일률인상과 정기승급을 요구해 관철시키면 이를 토대로 중소기업의 임금인상도 같이 이뤄지던 춘투는 이제 확실한 과거 유물이 됐다. (도쿄=연합뉴스) 이해영 특파원 lh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