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과객들의 걱정들..姜萬洙 <디지털경제硏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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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후배 경영인으로부터 사외이사가 돼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외이사제도에 대해 우리의 여건에서 실효성이 의문이었고 설사 도입한다 하더라도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법으로 강제돼 선임된 사외이사는 과객(過客)일 뿐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망설이다가 외국인 대주주와 사외이사가 있는 회사라 무엇인가 다를 것 같아 받아들였는데 그 역시 생각대로였다. 주요한 의사결정이 있을 때 역시 사외이사는 과객이었다.
어쩌면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같은 식객(食客)정도라고나 할까.
있을 자리가 못 된다고 생각돼 식객에게 과분한 대우를 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떠나기로 했다.
'본인'이 필요없다는데 이러한 식객들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은 '기업인보다 기업을 더 걱정하는' 또 다른 과객들이었다.
그들은 어떤 그룹에 지주회사를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든지 그룹비서실을 없애야 한다든지 까지 걱정하고 나섰다.
이유들은 그럴싸하기도 한데 기업들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엉뚱한 규제에도 말도 못하고 따라간다. 국부창출과 고용창출의 기여는 '차떼기' 정치 비자금으로 빛을 잃었다.
또 다른 규제의 빌미를 추가했다.
투자는 위축되고 공장은 떠나고 청년실업이 늘어만 가는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아파트 재산세를 최고 7배나 올리겠다는 중앙정부의 방침에 지방자치단체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과세권을 빼앗겠다는 으름장이다.
과세주체는 엄연히 지방자치단체이고 입법의 주체는 국회인데 과객들이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경기를 부양한다고 수백조원의 과잉유동성을 풀고 아파트 당첨규제를 풀어 투기를 부추긴 사람은 누구인데.투기꾼은 떠나고 아파트 한 채에 눌러앉아 사는 주변머리 없는 '원주민'에게 '세금벼락'이 웬말인지.선진국의 재산세는 자치단체마다 다르고 부담률이 높은 것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의 결정으로 많이 내는 것이지 누가 많이 받아가거나 많이 내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재산세 수입이 넘쳐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기 일쑤인 부자 단체에 '본인'은 싫다는데 '과객'이 더 받으라 하니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전도된 요지경이다.
과객들이 설치며 주인 노릇하는 황당한 일은 줄을 이어 있다.
대학보다 대학을 더 걱정하는 과객들이 해마다 일으키는 수능시험 해프닝도 그렇고 제자의 선발방법을 과객에게 빼앗기고도 순종하는 대학당국자들에 이르면 측은지심이 앞선다.
한적한 곳에 신호등을 세워 사람도 차도 멍청하게 기다리게 하고 오히려 교통체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선진국과는 다른 좌회전 우선신호에 좌회전하는 차 한 대 없는데도 멍청하게 정차해 있을라치면 참다가도 짜증이 난다.
에너지와 시간 낭비도 엄청나거니와 본의 아니게 공해 유발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본인보다 본인을 더 걱정하는 과객들의 자선은 위선이 아닐는지.
어떤 기업인이 지금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는 길은 정부가 어떻게 해 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하지 않느냐에 있다고 한 적이 있다.
다른 기업인은 정부의 개혁 로드(Road)맵이 짐이 되는 로드(Load)맵이라고도 말했다.
어떤 경제단체에서 주무장관을 모시고 관례적인 조찬간담회를 했는데 사람 모으는데 무진 고생을 한 일도 있었다.
정부의 지원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WTO체제에 살고 있고 정부의 기능이 체계적으로 폐기돼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얘기다.
과객들은 너무 설치고 정작 주인들은 너무 주눅이 들어있다.
'민주(民主)'가 무엇인지 '자치(自治)'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경쟁국에 없는 기구나 사람들을 없애고,해야 하는 일들만 확실히 했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제대로 못하는 과객들이 월급값을 한다고 설쳐서 말썽이다.차라리 식객 노릇이나 한다면 세금이나 축내고 말텐데 본인보다 본인을 더 걱정하는 과객들의 행진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선의만으로 포장된 길의 종착점은 지옥이라는 외국 속담이 생각난다.
협객(俠客) 노릇 하라고 과객들이 만들어 준 자리인데 식객 노릇밖에 못하고 떠나는 마음 허전하다.
내가 바보인가 그들이 바보인가.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