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종이 작가 김영희씨의 조형작품은 가난했지만 정(情)이 살아 숨쉬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들을 빚은 것이다. 호박 한덩어리를 얼싸안은 소년,둥글고 넓적한 얼굴,실처럼 작은 눈과 노래하듯 오므리고 다문 입…. 정감어린 동심의 세계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인형들이다. 독일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김씨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3년만에 개인전을 갖고 있다. 연 날리는 아이,아이에게 부채질해 주는 엄마와 손자의 재롱을 지켜보는 할머니 등 30∼50cm 크기의 조형작품 60여점 외에 한지 소재의 평면회화도 내놨다. 작가는 홍익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회화와 조각을 동시에 전공했다. 첫 남편과 사별 후 1981년 독일 뮌헨으로 이주해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다섯살 때부터 한지를 물들이고 접고 붙이며 한지를 다뤘다는 김씨는 자연 재료인 한지에 서구 현대사회에서 점차 잊혀져 왔던 손작업으로 유럽 무대에서 관심을 끌었다. 조형작품들은 대부분 소품이지만 머리카락 눈썹 하나하나에까지 정성을 들여 만드는 품이 장인정신을 돋보이게 한다. 부모 세대들에게는 가난했던 시절의 향수를,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어린시절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김씨는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눈화장만 하는 여자' 등의 자전적 에세이를 통해 국내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다. 환갑을 앞두고 열린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는 요즘 사는 이야기와 창작동화를 담은 '사과나무 꿈나들이'(샘터 간) 출판기념회도 겸한다. 내년 1월17일 오후 3시에는 김씨가 닥종이 기법을 강연하고 실습도 할 수 있는 워크숍이 마련된다. 내년 1월25일까지. (02)734-6111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