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동쪽으로 70㎞가량 떨어진 갈란타. 70∼80년대 우리 농촌지역을 연상케 하는 이 작은 도시에 삼성전자 TVㆍ모니터 공장이 있다.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허리춤 이상 잡초가 덮혀 있고 10년전 문닫은 낡은 가구 공장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곳이다. 그런 폐허의 땅이 이제 삼성전자 동유럽 생산벨트의 핵심 거점으로 변모하고 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슬로바키아 공장을 "가장 공장다운 공장"이라며 아낌없는 칭찬을 던지고 있다. 슬로바키아 공장은 헝가리 TV공장과 브라운관(삼성SDI), 종합부품(삼성전기) 라인을 연결하는 삼성의 동유럽 TVㆍ모니터 생산기지의 종합판이다. 삼성은 이를 바탕으로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 가전라인과 물류기지, R&D센터까지 동유럽에 터를 잡을 계획이다. '새로운 기회의 땅' 동유럽을 향한 삼성의 발걸음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 동(東)으로, 동(東)으로 =동유럽의 EU 가입을 앞두고 삼성은 파상적인 '동진(東進)작전'에 나섰다. 영국 윈야드 공장의 TV라인을 일찌감치 헝가리 공장으로 옮긴데 이어 지난해에는 CDT 모니터 라인도 슬로바키아 공장으로 뜯어왔다. 또 스페인 공장의 모니터 라인 일부도 슬로바키아 공장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삼성전기는 2001년 포르투갈 공장을 폐쇄하고 그 설비를 옮겨다 헝가리에 새 웅지를 틀었다. 삼성SDI는 1천억원 이상을 들여 지난해 헝가리에 연산 2백60만대 규모의 브라운관 공장을 세웠다. 삼성이 이처럼 동유럽에 거대한 생산 벨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생산기지로서 이 지역의 메리트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다. 조규담 삼성전자 헝가리 법인장(상무)은 "서유럽에 비해 5분의 1∼7분의 1 수준인 낮은 인건비와 사통팔달의 지정학적 위치, 여기에 EU가입시 관세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최적의 공장입지"라고 말했다. 삼성은 동유럽에 백색 가전라인, 물류기지, R&D센터까지 입주시켜 완벽한 의미의 수직 계열화를 추진중이다. ◆ 핵심 거점, 슬로바키아 =삼성의 동유럽 사업장 중 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은 슬로바키아다.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2공장이 완성되면 연산 6백만대의 TVㆍ모니터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동유럽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 슬로바키아 공장의 1인당 월평균 임금은 2백20달러로 동유럽 사업장중 가장 낮다. 총리까지 나서 외자유치에 매달리고 있는 슬로바키아 정부는 10년간 법인세 면제 해택을 줬다. 4만2천평에 달하는 공장 부지와 건물 구입에 들어간 돈은 60만달러(7억2천만원)에 불과했다. 슬로바키아 국민의 절반 정도가 헝가리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90년 설립돼 숙련도가 상당 수준에 달한 헝가리 공장 직원들이 헝가리어로 슬로바키아 공장 근로자들을 교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헝가리 공장의 치코시 벨라 생산과장은 "영어로 할때보다 의사소통도 잘되고 거부감도 적다"며 "공산체제 동유럽에 만연했던 '넴 투돔(Nem tudom, 모르겠는데요)' 의식을 '투돔(Tudom, 예 알겠습니다)'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힘입어 슬로바키아 공장의 가동 첫해인 올해 2억달러의 매출과 함께 흑자가 확실시 된다. 삼성은 이곳을 모니터TV, DVD플레이어, 셋톱박스 등을 만드는 복합 생산기지로 키울 계획이다. ◆ 동반진출의 시너지 효과 =헝가리의 삼성전자 TV공장(야스페니사루), 삼성SDI 브라운관공장(괴드), 삼성전기 부품공장(시게첸미클로스) 등은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동, 북, 서 방향반경 1백㎞내에 있다. 90년 헝가리 최초 외국계 제조업체로 터를 잡은 삼성전자에 이어 2001년에는 삼성전기, 지난해에는 삼성SDI가 들어섰다. TV 부품업체까지 동반진출 함으로써 얻게되는 가장 큰 효과는 EU의 원산지 규정을 맞출 수 있다는 것. 동유럽이 내년 5월 EU에 가입하면 삼성전기의 부품은 EU산 부품, SDI의 브라운관 역시 EU산 브라운관으로 인정받아 '택스 프리(tax free)'가 적용된다. 또 지리적 인접성으로 상호기술협력과 리얼타임의 A/S, 안정적인 부품 공급이 가능해진다. 김창곤 삼성SDI 헝가리 법인장(상무)은 "헝가리 3개사와 슬로바키아 공장, 독일 삼성코닝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정례적으로 기술 미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야스페니사루(헝가리) 갈란타(슬로바키아)=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