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는 서유럽을 보면서 발은 러시아에 두고 있는 나라.' 폴란드를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강대국 독일과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외침을 겪어야 했던 약소국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나타낸 비유다. 폴란드는 유라시아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위치해 있어 TSR(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란 지정학적 위치가 이를 설명한다.하지만 양국의 움직임은 극명하게 갈린다. 폴란드는 내년 EU(유럽연합) 가입으로 사실상 영구적인 국가안전을 보장받았다. 정치·군사적으로 러시아와의 완충지대를 얻게 된 대가로 EU는 폴란드에 향후 10년간 1천억유로(1백40조원)를 지원한다. 유럽의 '동진(東進)'에 당황한 러시아는 유라시아 물류거점이 될 TSR 종착지를 폴란드에 양보했다.이러한 폴란드가 최근 미국의 '트로이의 목마'란 닉네임을 얻었다.내년에 독일의 미군기지가 이곳으로 이전되는 것을 빗댄 말이다. 폴란드는 유럽과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의도를 충족시켜 국제무대에서 세계경찰로 행세하는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다.미국과 EU 러시아를 똑같은 외교적 거리에 놓고 최대이익을 뽑아내겠다는게 폴란드의 계산이다. 한 폴란드 관리는 "건국이래 처음으로 국가부흥의 호기를 맞았다"며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지 않으면 결정당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체험의 교훈 덕분"이라고 말했다. 폴란드에 진출한 한국기업인들은 이러한 폴란드의 생존방식을 어떻게 평가할까. "이라크 파병에서부터 자유무역협정,방사선폐기물처리장까지,무엇하나 명쾌하게 결론짓지 못하는 정부를 보면서 때론 최악의 결정도 때늦은 결정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직도 1년전 대선 상황에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상황을 답답하게 지켜보는 현지 기업인들의 속내다. 바르샤바=이심기 산업부 기자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