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홀로그램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6·25 직후를 다룬 영화 '아름다운 시절'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미군부대 물건을 빼돌리다 들켜 온몸에 붉은 페인트칠을 당한 채 쫓겨난다.
이후 오랫동안 이땅에선 출처를 알 수 없는 외제물건들이 몸뻬바지 속에 담겨 이집 저집 배달되고,다 쓴 화장품 용기와 빈 양주병을 사가고,잊을 만하면 가짜 외제품 적발 뉴스가 터져나왔다.
수입 개방으로 없는 게 없는 지금도 가짜 양주는 여전하다.
술집에서 마시는 사람의 50%가 '가짜가 아닐까' 의심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라벨의 인쇄상태가 선명한지,흔들어봐 부유물이 곧 가라앉는지,뒤집었을 때 물방울이 커다란지 등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지만 정작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가짜 제조법이 교묘해지는 만큼 업체의 방지책도 다양해졌지만 역부족인지 결국 국세청에서 모든 양주에 위조방지용 홀로그램을 부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병 뚜껑에서 목까지 씌우는 비닐캡에 상품명과 제조연도 제조회사 등을 담은 홀로그램을 곁들인다는 얘기다.
홀로그램(Hologram)이란 빛의 간섭 속성을 이용한 일종의 영상기록장치로 잉크프린팅이나 스캐닝 컬러복사같은 기존 인쇄방식으로 복제가 불가능하고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나 글씨가 다르게 나타나 일반인도 쉽게 판별할 수 있다.
신용카드나 음반 라벨 등에 붙어있는 반짝거리는 표시가 그것으로 자동차 순정부품 발기부전치료제 골프채 등 위ㆍ변조 제품이 많이 나도는 물건에 주로 사용된다.
가짜가 생겨나는 건 뭐니뭐니 해도 수요가 넘치고 이득이 큰 까닭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술소비는 세계 2위라고 하거니와 특히 양주 수입은 최고다.
지난해 양주 완제품과 위스키 원액을 합하면 주류수입액만 1조원대에 이르고,밸런타인 17년산은 총생산량 16만병중 6만병을 우리가 수입했다고 할 정도다.
술집에서 10만∼20만원씩 하는 양주지만 가짜는 2천원이면 만들고,위스키의 90%를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에서 소비하는 것도 가짜 양주 범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술로 한해의 고달픔을 잊으려는 건지 양주 소비량의 30%가 연말에 집중된다고 한다.
이렇게 계속 마셔대는 한 홀로그램 효과도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