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동북아 관료 중심 국가..정규재 <경제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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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속이고…"라는 말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결과에 분개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이었다.
명민하다는 평가는 받아본 적이 없었던 YS였다.
그러나 대통령이라고 해서 언제나 투명한 보고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기꾼은 도처에 널려 있고 온갖 변설가들이 주변을 에워싸는 것이고 보면 경륜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권력자 노릇 해먹기란 정말 어렵기도 할 것이다.
더구나 아마추어에게 보좌받는 대통령이 노련한 관료집단에 포위된 상황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최근의 일로는 재정경제부가 내건 동북아 금융허브 구호가 그런 사례다.
정치적 책략에서는 혀를 내두를 만큼 복잡한 수를 펼쳐가는 대통령이지만 직업 관료들이 온갖 변설을 내세워 집단이익의 참호를 파는데 이처럼 속수무책이라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다.
물론 집권구호로 내건 '동북아중심'이기도 했겠지만 화려한 구호 뒤에 해묵은 과제를 슬쩍슬쩍 끼워 파는 관료들의 속임수를 간파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재경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동북아 금융중심론'은 한마디로 한국 금융의 괴멸적 상황을 호도하는 기만적 구호다.
지금 한국의 금융시장은 악착같은 외국 투기펀드들의 전성시대인 것이며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관치금융의 완결편으로 치닫는 상황일 뿐이다.
문제의 LG카드는 국책 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직접 인수자로 나서야 할 형편이고 전직 재경부 장관의 이름을 빌려 각종 공기금으로 3조원의 '이헌재 펀드'를 강제로 조성하지 않으면 '우리금융' 주식은 팔아먹을 곳도 없는 현실이다.
고도화된 외환시장을 육성하며 자산운용업을 획기적으로 키운다는 것이 금융허브론의 골자지만 이는 작은 거짓말을 가리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둘러대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경부가 개입하면서 외환시장은 왜곡의 도를 더해가고 있고 딜러들이 겁을 집어먹으면서 시장기능은 빈사상태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 한국 외환시장의 초라한 면모다.
최근 그나마 희소식이라는 수출 급증세도 약간의 기만을 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비정상적으로 원화를 약세로 만들어 밀어내기 수출을 독려하는 것일 뿐 총선 이후 혹은 내년의 어느 시점에 누적된 문제가 악성종양이 되어 터져버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 재경부의 배짱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총선까지만 끌고갈 요량이라면 우리는 그것에 '아첨'이라든가 '기회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다.
자산운용업 육성을 내세운 한국투자공사(KIC) 설립 방안은 재경부 나으리들이 국내뿐 아니라 이제 해외 나들이에서도 어깨에 힘 좀 주어보자는 것일 뿐,그 어떤 현실적인 소요도 없다.
더구나 퇴직후 나갈 자리까지 미리 만들어 놓는다는데 이런 묘미가 또 있겠는가.
재경부는 싱가포르 투자청(GIC)을 둘러대고 있지만 싱가포르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정부구조를 갖고있을 뿐이어서 그것으로 논리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독재자 리콴유 총리가 GIC 이사장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구조와 실체는 알만하다.
재경부가 KIC 설립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이지 역겹다.
그리고 보면 참여정부 들어서 살판 난 것은 줄곧 개혁의 대상이었던 검사와 관료들밖에 없는 것 같다.
검사의 힘은 더욱 커져 나라를 뒤흔들고 관료들의 은밀한 행동요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꾸역꾸역 감투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대통령은 5년,관료는 30년"이라는 마당에 대통령은 정적(政敵)과 싸우는 외에 과연 '어떤 혁명'을 하고 있다는 것인지….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