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본에 대한 국내 자본 '역차별' 폐지 차원에서 재벌 등 산업자본에 대한 은행업 진출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기업금융의 젖줄인 우리금융지주 등 민영화가 예정된 주요 시중은행을 또다시 외국계에 넘길 경우 금융주권에 그치지 않고 산업 주권까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여론에 '힘'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과장된 반(反)외자논리는 위험하며, 산업자본의 은행업 경영이 허용될 경우 과거 폐해가 입증됐던 '사(私)금고화'가 재현될 수 있다는 반대논리도 만만치 않다. ----------------------------------------------------------------- [ 贊 - 중견기업 컨소시엄 대안될듯 ] - 이찬근 < 인천대 교수 >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들은 수익성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며, 따라서 리스크가 있는 기업금융보다는 소매금융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내 은행들도 이들과 수익력을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업금융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게 되고, 그 결과 기업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 여력을 크게 위협받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새로운 성장을 위한 모험적 투자가 필요하다. 외국 자본의 금융시장 잠식은 이런 투자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 은행은 단순한 상업회사가 아니라 사회의 인프라라는 측면이 중시돼야 한다. 주식 채권 등 직접금융시장이 기업금융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국내 상장사 가운데 영ㆍ미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업은 수십곳에 지나지 않는다. 은행은 직접금융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수 있는 주요한 창구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민영화대상 국내 은행을 인수할 대안으로 산업자본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기가 왔다. 경제력 집중현상이 우려된다면 중견기업들이 은행을 합동 인수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은행도 기업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은행으로 변모시켜 나가는 그랜드 디자인을 구상해볼 만하다.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 불가'라는 주장은 한국 산업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차원의 은행산업 재편 문제를 단순한 재벌 문제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재벌 비판은 곧 경제 정의'라는 수준으로 은행산업 재편을 바라봐서는 안된다. [ 反 - 건전한 외자가 더 바람직 ] - 함준호 < 연세대 교수 > 은행을 외국계 펀드에 마구잡이로 넘기는 것은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의 국적성을 따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엄정한 적격성 심사를 통해 국내외 자본을 불문하고 건전한 자본이 은행산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국자본의 국내 진출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국내 은행이 경쟁에서 뒤져 퇴출 위험에 빠질 수 있고, 외국의 비즈니스 사이클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건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다양한 금융 상품개발, 선진경영 기법 전수 등을 통해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강화하는 순기능도 감안해야 한다. 외국계 금융회사는 특히 해외에서 어렵지 않게 자본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경제 사이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어 국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국내외 자본의 균형을 고려해야 하지만 국내에 은행업을 영위할 만한 자본이 없으면 산업자본보다 외국계 은행에 맡기는게 더 바람직하다. '이헌재 펀드' 등 사모펀드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이 은행을 경영할 수 있을지 검증된 것이 없다. 외국계보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아직도 은행을 통해 산업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 얘기다. 은행이 갖고 있는 한정된 정보를 기반으로 대규모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고도의 산업사회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자본시장은 수많은 투자정보가 교환되는 시장이므로 이를 통한 투자결정의 성공 확률이 훨씬 높다. 결국 자본시장 중심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