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프라스틱 버클 생산업체인 우진 프라스틱 백남일 회장은 그야말로 오뚜기 같은 인생의 이력을 지니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에서 시련을 맞이하곤 하지만 그는 그 시련을 마치 버팀목처럼 딛고 일어서 지금의 회사를 일구는데 성공했다. 6·25 동란의 와중에 온 가족이 월남해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그는 말 그대로 주경야독을 하며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그리고 당시만해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업이었던 나주비료공장에 입사, 한 부서에서만 10년을 근무하며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낙하산 인사로 들어온 상급자를 보며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고 10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에 손 댄 사업이 실패하고 이후로 건축업 등 다른 사업에도 도전했지만 결국은 모두 실패하고 만다. 백 회장은 "그때는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며 "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이대로 그만 둘 수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작은 플라스틱 회사에 입사하면서 그의 플라스틱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는 이 곳에서 플라스틱에 대해 제대로 된 공부를 하게 된다. 이후 회사가 대기업의 수주물량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일이 밀려 들었고 결국 사장의 권유로 나머지 수주 물량을 가지고 독립해 나가게 됐지만 투자자의 배신으로 다시 한 번 좌절을 겪게 된다. 그러나 친구의 도움으로 우진 프라스틱을 시작한 그는 당시 세계 플라스틱 업계에서 디자인으로 가장 유명한 내셔널 몰딩사의 조셉 앤셔 사장을 직접 찾아가 그 회사와 파트너 계약을 맺게 된다. 백 회장은 "일면식도 없던 그 사람을 직접 찾아가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지만,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까지 이르게 되면서 그야말로 절박한 심정으로 그를 만나러 가게 됐다"고 말하고 "결국 그런 나의 열정을 확인한 조셉 앤셔 사장은 바로 다음날 우리와 파트너 계약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생산하는 버클 종류만 1,030여종, 3천만불 수출을 내다보는 일류기업이 되기까지 온갖 시련을 이겨낸 것은 바로 이런 그의 열정이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그는 "직원들에게 항상 신기술, 신지식을 불어넣어줘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듀폰같은 케미컬 회사가 식품사업에 진출했듯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우수한 음식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개발해 세계에 알리고 국가 경제에도 이바지 할 수 있도록 사업을 구상중"이라며 지치지 않는 그의 열정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