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기획예산처 장관으로 내정된 김병일 금융통화위원의 집무실. 연신 울려대는 전화벨, 5분이 멀다하고 찾아드는 축하객들로 여느 때와 달리 무척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기자를 맞는 순간에도 김 장관 내정자의 양손은 사무실 전화와 휴대폰 사이를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장관'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새삼 실감케 하는 순간.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내정된 소감을 묻는 걸로 축하 인사를 대신했다. "어깨가 무겁습니다. 예전엔 조언을 구할 선배들이 주위에 많았는데 어느덧 예산처 업무에 관한 한 제가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앉게 됐네요." 목소리는 평소보다 약간 들떠 있는 듯했지만 '기사거리'가 될 만한 질문에는 요령껏 핵심을 비켜갔다. 기획예산처에서 공보관을 지내면서 수많은 기자들을 상대했던 관록 때문일까. 내년 적자재정 가능성에 대해 김 내정자는 "장관이 되고 나서 5∼6개월이 지난 후에도 얘기하기 조심스러운 대목이지 않느냐"며 질문을 돌아 나갔다. 언제 언질을 받았느냐는 물음에도 "공식 통보는 어제 아침에 받았다"고 짤막하게 답한 뒤 "30년 공직경험상 인선에 관한 얘기는 자세히 안하는게 좋은 것 같더라"고 말했다. 내년 경기전망에 대해서도 "한은의 공식입장과 같다"고만 했다. 각료 중에서 행시기수(10회)상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데 앞으로 위아래 기수의 '조정'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내정자는 "예산처 장관은 국무회의에서도 말석에 앉는다. 행시 기수만을 놓고 보면 위와 아래가 다 있지만 조정 역할을 할 만한 자리는 아니라고 본다"고 부인했다. 지금까지 결정된 각료 가운데 행시 기수가 가장 빠른 사람은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 내정자(3회)이고 김진표 부총리는 막내뻘인 13회이다. 금통위원을 그만두면서 '혹시' 아쉬운 점이 있냐는 질문에 김 내정자는 '마라톤 전도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새해 1월11일에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로 했는데 약속을 못 지킬 것 같다"며 서운해 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