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제조업체들은 올해 힘든 한해를 보냈다. 외환위기 때보다 경영이 어려웠다고 말하는 기업인들이 많을 정도다. 인력난 자금난 내수위축 등으로 가동률이 60%대에 머무는 극한 상황을 견디며 지내왔다. ◆최악의 바닥 경기=조영승 삼성문화인쇄 사장은 "대당 10억원이 넘는 일본제 고가 인쇄설비를 놀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처럼 비싼 설비를 돌리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기협에 따르면 중소제조업체 가동률은 올해 줄곧 70%를 밑돌았다. 최근 조사한 11월 가동률도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70%를 밑돌아 69.7%에 머물렀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더 문제인 것은 내년 1월 중소기업경기전망 건강도지수(SBHI)가 86.9로 금년 12월(87.6)보다도 낮다는 것이다. 기협 관계자는 "신년 초에는 회복기대감으로 상승해야 하는데 예상 외의 결과가 나왔다"며 "내년에도 중소기업경기가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게다가 모기업의 납품단가 깎기,어음발행 증가,판매대금 결제기일 장기화도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런 이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난달까지 부도업체수는 4천8백76개에 달했다. 이미 작년 한햇동안의 4천2백44개를 넘어선 것이다. 월평균 4백∼5백개 기업이 부도를 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부도기업은 5천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최삼조 주물조합 전무는 "연말 자금수요가 몰리면서 경영위기에 몰리는 회원사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10곳 중 4곳이 앞으로 2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분석마저 나왔다. ◆일손이 없다=중소기업의 평균 부족인력은 15만4천명(부족률 9.4%)에 달했다. 내년에는 인력난이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정부단속의 강화로 내달부터 제조업 현장을 떠나야 할 불법체류 외국인이 10만9천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기협중앙회 이재학 산업조사처 부장은 "최근 조사결과 내년 상반기의 인력부족률이 13%대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람 구하기가 힘들자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줄어드는 벤처기업=벤처기업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지난달말 현재 벤처지정기업은 7천7백88개. 올 들어 1천20개사가 줄었다. 벤처지정이 피크를 이뤘던 2001년말의 1만1천3백92개에 비해선 31.6%(3천6백4개)가 감소한 것이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벤처지정이 취소된 업체 중 80∼90%는 문을 닫거나 기술력 수익력이 부족한 업체"라고 말했다. ◆벤처기업의 자금난=벤처기업협회가 최근 발표한 올해 벤처기업 10대 뉴스 가운데 첫번째는 '최악의 자금난'이었다. 벤처업계의 돈가뭄은 투자시장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벤처투자 시장이 생긴 이래 최악의 실적을 보였다. 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동안 벤처캐피털들의 총 투자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60% 수준인 2천6백억원에 머물렀다. 지난 2000년 투자금액이 2조원에 달했던 점을 상기하면 얼마나 격감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은 "벤처업계는 힘든 한해를 보냈지만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장 회장은 "수출형 벤처기업들의 매출은 오히려 크게 늘었다"며 "닷컴기업들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며 수익성이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은 개성공단에 희망을 걸고 있다. 서석홍 포리프로피렌섬유조합 이사장은 "중소기업들이 고임금과 인력난 타개를 위한 돌파구를 개성공단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입주희망의사를 밝힌 중소기업들이 1천개가 넘고 있다. 이계주·고경봉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