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아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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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해가 저문다.
언제 다사다난하지 않은 적이 있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정말 올해는 어지럽고 소란했다.
새해가 시작되기 무섭게 대구 지하철 참사가 터지더니 1년 내내 온 땅에서 '투쟁'이 끊이지 않았고,계속된 불황은 청년실업 증가로 이어져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로또 광풍은 남녀노소 죄다 '인생 역전'이라는 신기루를 좇아 브레이크 없이 달리게 했고,신용카드 대란은 신용불량자 3백60만명이라는 기막힌 사태를 불렀다.
그것도 모자라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 파문에 광우병까지 몰아닥쳤다.
이 땅에 사는 것 자체를 징그럽게 만드는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은 그러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본분을 알고,의무를 다하고,무엇이든 꾸준히 차근차근 쌓아가는 대신 하루 아침에 대박을 바라면서 실속보다 외양을 중시하고,땀 흘리지 않고,책임지지 않고,매사에 무임승차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고,안갚을 수 있는 빚은 없고,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는 일 또한 없다.
네티즌들에게 눈덩이같은 카드빚의 원인을 물었더니 유흥비가 58%로 가장 많고 다음이 기초생활비(27%) 사교육비(5%)순이었다는 조사결과는 신용카드 대란의 원인이 '외상이면 소도 잡는다'는 식의 묻지마 소비에 있었음을 알려준다.
앞뒤 안가리고 함부로 주고 받는 말과 행동도 세상을 자꾸 어지럽히는 주요인이다.
"막하자는 거냐" "못해 먹겠다"도 충격이지만 "까발린다" "씩씩댄다"도 보고 듣기 괴롭다.
말은 품격이다.
예의와 교양은 치레일 수 있지만 치레와 형식은 많은 경우 마음가짐을 좌우한다.
위 아래 할 것 없이 '시근벌떡 소리치고,떼쓰고 위협하고 배 째라'고 나오는 한 희망은 다가오기 힘들다.
새해엔 우리 모두 땀 흘리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매사에 한번 더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고 자유란 책임을 전제로 하는 것임을 기억했으면 싶다.
또 '열심히,부지런히,성실하게' 같은 말들이 우습게 여겨지지 않고,'도란도란 차근차근 차곡차곡 또박또박' 같은 말들이 살아났으면 좋겠다.
모든 궂은 일은 계미년과 함께 사라지고.고수레!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