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회사들이 갖고 있는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당분간 현행대로 30% 범위 내에서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내부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해 실제 권한 행사가 이전보다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부는 30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관계 장관 간담회를 갖고 '시장 개혁 3개년 로드맵'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선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기 위해 지난 2001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허용된 재벌 계열 금융ㆍ보험회사 보유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점진적으로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확한 추진 일정을 못박지 않고 원칙에만 합의함에 따라 당분간 의결권 행사는 인정받게 될 전망이다. ◆ 이사회에서 의결권 남용 견제케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ㆍ보험사가 갖고 있는 계열사 지분에 대해 △임원 임면 △정관 변경 △영업 양수ㆍ도 및 피합병 등 세 가지 경우에만 다른 비금융 계열사의 보유 지분과 합해 30% 한도 내에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내년 상반기중 법 개정을 통해 금융회사의 의결권 행사시 이사회 의결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지배주주들이 지배권 확장을 위해 금융회사 지분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의결권을 행사한 내역에 대해서는 반드시 공시토록 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아울러 소액 주주의 의사결정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한편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생기는 피해에 대해 정부가 대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배상금을 받아주는 '공익소송제' 도입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 일단 재경부ㆍ재계의 '판정승' 정부는 지난 4월 이후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시민단체와 재계, 학계가 참가하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금융회사 의결권 제한문제를 논의해 왔다. 공정위와 시민단체측은 의결권 허용이 지배력 확장에 악용될 우려가 크다며 의결권의 '완전 금지'를, 재경부와 재계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며 '현행 틀 유지'를 주장해 왔다. 8개월째 논란 끝에 내린 이날 결론은 궁극적으로 완전 금지시킨다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추진일정에 대한 언급이 없어 이른 시일 내에 완전 금지는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버린자산운용 등 외국계 투자펀드들의 국내 기업에 대한 경영권 공격이 거세진 상황이어서 정부가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만들 조치를 선뜻 취하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어서 당장 의결권 금지가 어렵다는데 공감했다"며 "때문에 금융회사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등이 계열사 의결권 행사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선에서 공정위측과 합의를 봤다"고 말했다. ◆ 긴장하는 재계 재계는 당장은 아니지만 정부가 단계적으로 의결권을 폐지키로 합의한 사실 자체를 긴장속에 받아들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외국 기업의 국내 기업 적대적 M&A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이같은 정책을 실시하려는 것은 현실을 너무 모르는 탁상행정식 역차별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국자본의 적대적 M&A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장치를 없애 국내 기업을 무장해제시키는 꼴"이라며 "출자총액 규제로 주식이 분산된 기업은 더욱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재벌 금융·보험사들에 자기계열 주식보유한도가 설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이중규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일단 의결권 행사를 금지시키기로 합의한 자체가 큰 진전"이라며 "앞으로 관련부처 협의를 통해 얼마의 기간에 걸쳐, 얼마씩 한도를 줄일지를 정해 나갈 것"이라고 추진 의지를 밝혔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