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핵심 과제로 제시됐던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 부작용 차단 방안'이 4일 마침내 최종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부가 장장 8개월간 논의를 거쳐 내놓은 방안은 금융업역별로 들쭉날쭉했던 각종 규제 기준을 통일적으로 마련했다는 데에는 의의가 있지만 정작 그간 '재벌의 사금고'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던 제2금융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대주주 지원 통로를 차단한다는 측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밀려난 핵심 규제 방안들.. 행태 규제로 메워져 당초 정부는 외환 위기와 대규모 공적 자금 투입의 큰 원인을 '제2금융권의 재벌 사금고화'에서 찾고 이의 차단 방안으로 ▲금융 계열 분리청구제 ▲제2금융권 대주주 자격 유지제 ▲재벌 계열 금융회사의 계열사 지분 의결권 제한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로드맵'은 이중 어떤 것도 실행 계획에 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금융 계열 분리청구제는 '재산권 침해 등 위헌 소지'를 내세워 아예 실제 도입 가능성 자체를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꼽혔던 대주주 자격 6개월 내지 1년마다 재심사 방안도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것은 개혁 의지의 커다란 후퇴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는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배경으로 "금융회사의 설립 또는 인수 당시 대주주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거쳤는데 주기적으로 다시 심사해 지분 처분 명령등의 조치를 내린다면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대주주 자격 유지제'는 정작 재벌의 인수가 허용되지 않고 있는 은행에대해서는 이미 실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는 진작부터 정착된 제도라는 점에서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재벌계 금융사들의 계열사 지분 의결권 제한 방안도 이사회 의결을 의무화하고공시를 강화하되 현재 비금융 계열사사 지분을 포함해 30%까지만 허용되고 있는 의결권 행사 한도는 '축소를 검토한다'는 애매한 문구로 대체됐다. ◆도입 발표 방안도 실효성 여부는 아직 미지수 정부가 대주주 자격 유지제 등 고강도 조치 대신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 중 비교적 강도 높은 조치는 ▲부실 징후 대주주와 금융회사의 거래 정지 명령제 ▲대주주관련 규제 위반시 금융 감독 당국의 대주주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권 규정 ▲금융회사 출자, 인수 자격 강화 정도다. 그러나 이중 부실 징후 대주주와 금융회사간 거래 정지 명령제는 '대주주의 부실 징후'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제도 자체의 실효성이 판가름날 수밖에없지만 그같은 기준은 8개월간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반면 제2금융권을 설립, 인수하려는 기업이라면 자기자본이 금융회사 출자금의4배 이상이 되도록 하고 부채비율 요건을 1차적으로 200% 이하로 통일하되 추후 제조업 평균 수준까지 낮추기로 한 것은 로드맵 중 가장 강력한 조치라는 평가다. 제조업 평균 부채비율이 2002년 현재 135%까지 낮아진 만큼 앞으로 빚 많은 회사들은 무리하게 금융회사를 인수한 뒤 고객 자산을 '쌈짓돈'처럼 이용할 소지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환 위기 당시 무리한 대주주 지원으로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금융회사들이 적어도 인수나 설립 당시에는 모두 양호한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자격 유지심사를 상시적으로 실시하지 않고 설립 또는 인수시의 1회성 요건 강화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금융권역별 규제 기준 통일은 의미 있을 듯 '로드맵'은 당초 기대에 크게 못미쳤지만 금융권역별로 규제 기준을 통일했다는점에서는 기본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중 ▲제2금융권 자산 운용 한도의 자기자본 기준 통일 ▲자산 운용 규제 위반시 은행 수준으로 벌칙 강화 ▲비상장 금융회사에 대한 수시 공시 강화 ▲제2금융권의 사외이사 과반수 선임 의무화 등은 이번 로드맵에서 비교적 돋보이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이번 로드맵 발표와 무관하게 정부가 이미 현재 은행, 증권, 보험 등 권역별로 나눠진 금융법 체계를 금융회사의 설립, 자산 운용, 퇴출 등 기능별로 재편한다는 방침하에 법 개정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들 방안은 재벌의 금융지배 차단보다 '법 제도의 일관성 확보'라는 측면에 중점이 두어졌다는 지적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관계자는 "로드맵은 현재 추진 중인 금융법 개편 기준에 맞춰금융시장 규제를 일관화하는 데 큰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하고 "그러나산업자본의 금융 지배를 근본 차단하는 구조적 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행태 위주 규제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회의를 표시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기자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