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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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노벨은 그가 서거하기 1년 전인 1895년 11월 파리에서 유언장을 작성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보관해 두었다.
이 유언장에는 자신의 조카들은 물론 집사와 정원사의 자녀들에게도 얼마의 돈을 나눠주도록 세세하게 기록됐다.
나머지 모든 유산은 유가증권으로 바꿔 투자하고,그 이자로 해마다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금을 주도록 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벨상은 이렇게 제정됐다.
흔히 유언장을 '거룩한 준비'라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대비라기보다는 남은 생을 더욱 보람있게 살기 위한 또 다른 준비이기 때문이다.
유언장을 쓴다는 것 자체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과연 옳았는지,내 재산의 축적은 정당했는지,내 욕심으로 인해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것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일 것이다.
유언장은 재산 분배가 주된 내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재산목록표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언장문화가 서서히 확산되는 것 같다.
지난해 개설된 유언장닷컴 일명 '유언장은행' 방문자가 크게 늘고 있으며,얼마 전 '한국문인'(10·11월호)에는 소설가 한말숙씨 등 명사들이 가상 유언장을 실어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유언장은 오래 전부터 서양에서 일반화됐다.
생전에 변호사 입회 아래 문서나 녹음으로 유언을 남긴다.
유언장을 공개하는 방식과 입회인까지 지정하며,유언장의 밀봉이 훼손돼 있으면 무효일 정도로 엄격하다.
재산에 대한 분쟁을 막아보자는 취지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미국에서는 9·11테러 참사 이후,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유언장 작성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날인 없는 유언장을 둘러싸고 유가족과 은행 및 대학 간에 5백억원대 소송이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분쟁의 발단은 김운초 한국사회개발연구원 원장이 사망하면서 발견된 유언장이 서명이나 도장이 찍혀 있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지는 두고볼 일이다.
중요한 사실은 김 원장의 진정한 뜻이 무엇이었느냐가 아닐까.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