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哲煥 < 충남대 명예교수.前 한은 총재 > 우리는 어린이놀이터나 동물원에서 쉽게 다람쥐 쳇바퀴를 볼 수 있다. 다람쥐는 쳇바퀴 안쪽을 타고 끊임없이 달리고 쳇바퀴는 계속 돈다. 그러나 우리는 다람쥐가 달리는게 본능 때문인지,밖으로 나가기 위해서인지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쳇바퀴가 다람쥐의 행동을 그 안으로 제약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자유로운 시대에 사는 우리도 사회틀 속에서 산다. 종교, 사상, 법, 정책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정치·경제·사회적 동기와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는 틀은 법과 정책이다. 어떤 때에는 법과 정책이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동기를 자극하는 데에 반해 어떤 때에는 제약한다. 작년은 교수들이 '우왕좌왕'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택할 만큼 자유롭고 창의적인 동기와 활동범위가 제약됐다. 결코 장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은 아니었다.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행동양식과 일들을 잘 알고 있는데도 이를 둘러싸고 개인간, 집단간, 때로는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적합한 목적과 수단을 선택할 수 없었다. 정부의 역할은 이해상충을 야기하는 갈등 요소와 이해집단을 이해시키고 조정하는 틀을 만들며 규칙을 지키게 함으로써 수단선택에 동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작년은 합리적 선택과 집중은 고사하고 선택자체가 불가능한 한해였다. 정치권은 새틀(개혁)을 짜는 건 고사하고 저지른 부정을 덮기 위한 정쟁으로 지샜다. 집단적 항의에 대한 정치권 조정능력은 백치에 가깝거나 방관으로 일관했다. 결국 포기해야할 건 포기하지 않고 선택해야할 것만 포기한 셈이다.사실 선택할수 있는 어떤 정책이 다른 정책보다 우월한 건 아니다. 따라서 선택은 우리가 어떤 데에 더 큰 관심(가치선택차이)을 가지는가와 이견조정력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조세감면이 실업과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 상황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실업을 더 크게 우려하는 분은 조세감면을 찬성하는데 반해,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분은 반대할 것이다. 가장 많은 선택가치의 차이는 개인의 이해관계 불일치에서 발생한다.개인은 이익을 최대화하고자 함으로써 타인의 이익과 상충될 수 있다.다만 협력게임이 다같이 후생을 증대시킬수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집단간에도 같은 성향이 나타난다.또하나의 선택가치 차이는 현재와 장래의 이익선호 시차에서 발생한다. '제삿날 잘먹기 위해 굶을수 없다'는 생각이 그 예다. 현재의 고통이 장래의 이익으로 상쇄될 수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고통이 참을 수 없거나 장래의 이익수취가 확실치 않으면 장래이익을 선택하지 않는다. 설사 장래의 확실한 이익이 현재의 이익보다 크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현재이익만 선택하게 된다.이는 오류의 선택일 수 있다. 끝으로 집단간의 선택차이 중 가장 커다란 피해를 야기하는 건 정치권력이 국민의 이익을 외면하는 때이다.정치권력은 권력 자체의 획득을 최대의 가치로 하는 조직이다.국민을 위한다는 명제는 구호에 불과하거나 정치권력 획득의 방편이다.정치권력 자체만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나 국민적 위치에서 보면 오류의 선택일 뿐이다.거기다가 사회가 발전할수록 선택가치는 하위체계로 더욱 분화하고 위계적 사회구조가 해체돼 정부의 조정능력을 약화시킨다.이것이 레난테 마인츠의 '다이내믹 사회' 현상이다. 또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충돌이 어떤 방향으로 조정되느냐의 여부는 시대정신,사회경제틀,그리고 정부의 갈등조정능력에 달려있다. 결국 합리적 선택은 정치의 몫인 셈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는 정치권이 끊임없이 사회갈등의 조정방법을 개발하고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더구나 정치권 자체가 정치권의 이익선택 때문에 사회적 이익을 외면하면 합리적 선택을 기대할 수 없다. 금년에는 이런 일에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민은 과학적 사실과 평가를 존중하고 협력게임을 시대정신으로 이해해야 하고 정치권은 이견조정을 위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쳇바퀴 속의 다람쥐가 쳇바퀴를 탈출해서 자유롭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역동성을 선택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chchon@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