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에 위치한 구르가온의 GE센터. 전세계 GE 자회사와 지사로 전달되는 제프리 이멜트 회장의 경영지침은 모두 여기서 작성된다. 미국 본사 회장실 직원이 퇴근하면서 e메일로 '말씀요지'를 보내오면 이 곳 직원들이 문구를 다듬고 각각의 지시사항에 필요한 그래프와 밑그림을 추가해 완벽한 경영지침을 만든다. 이 지침은 다음날 아침 9시(미국시간) 이전까지 본사로 재전송돼 전세계 GE관련 회사에 뿌려진다. 기업들 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정당들까지도 여론조사와 선거전략 작성을 인도로부터 아웃소싱한다. 뉴델리 인근 노이다에 있는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전문기업 파트니사. 8천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올해말 실시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크게 높였다.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들의 각종 전화여론조사 특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이 회사는 미국 상원의원 선거에서 한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실적이 있다. 전화여론조사를 의뢰받아 그 후보에 대한 지지율과 지지층을 분석한 뒤 이를 토대로 득표 전략을 작성, 제공함으로써 상대후보를 누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는 설명이다. 파트니사 콜센터의 총괄책임자 로렌스씨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배는 우리가 좌우하게 될 것"이라며 BPO에 관한한 인도를 따라올 나라가 없다고 강조했다. 인도의 핵심성장 축 가운데 하나가 바로 BPO 산업이다. 인도 소프트웨어ㆍ서비스기업협회에 따르면 미국 포천지 선정 1천대 기업중 20%가 어떤 형태로든 인도에 백업센터를 두고 있다. 인도 제2의 IT집적지 하이드라바드의 한 콜센터를 방문한 파스칼 쿠슈팽 스위스 대통령은 "스위스는 인도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인도가 '세계경제의 백업센터'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도가 세계경제의 백업센터로 떠오른 배경은 영어와 IT기술을 겸비한 값싼 노동력이다. 여기에 더해 지축을 중심으로 미국과 1백80도 반대편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도 인도의 BPO 산업이 갖는 장점으로 꼽힌다. 인도 소프트웨어기술공단 방갈로르(인도 제1의 IT단지) 사무소장인 나이두씨는 "외국기업들이 잇따라 몰려들면서 3년전에 비해 업무량이 2배 정도 늘었으나 인도가 외국기업에 공급할 수있는 인력은 무궁무진하다"고 자신했다. 인도 전체 소프트웨어 수출의 69%이상이 집중돼 있는 북미지역과 지리상 정반대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은 '24시간 R&D체제' '글로벌 분업체제' 등을 가능하게 해준다. 인도 토종 IT기업인 L&T인포테크의 정해룡 부사장은 "방갈로르에 진출해 있는 TI 루슨트테크놀로지 등 외국 IT기업들은 대부분 24시간 연구체제를 가동하고 있다"며 "특히 델의 경우 미국 호주 인도 유럽을 연결하는 글로벌 R&D체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 기업의 상당수가 소프트웨어 품질관리 평가기준인 'CMM(capability maturity model) 레벨 인증'을 갖추고 있어 기술적 수준에서도 별 문제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CMM은 지난 90년대초 미국 국방부가 카네기멜론대의 소프트웨어 연구소(SEI)에 특별 의뢰해 개발한 것으로 최고 등급인 '레벨5'를 딴 전세계 80여개 기업중 50여개가 인도 기업이고 그 가운데 절반이상이 방갈로르에 있다. 미국 등에 비하면 30∼40%의 비용만으로 양질의 인력을 확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인도 IT의 가격경쟁력'도 외국기업을 불러모으는데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이다. 인도 정부는 밀려드는 외국기업을 기반으로 지난 2002년 98억달러였던 소프트웨어 수출을 오는 2008년 5백억달러로 늘린다는 '2008년 IT 비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기간동안 매년 30만명의 IT 엔지니어를 신규 배출하고 7백만명의 일자리(소프트웨어 부문 2백20만명, 하드웨어 부문 4백80만명)를 창출하는 등 세계 제일의 IT 선진국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물론 BPO 산업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결국 인도를 선진국의 하청생산기지로 전락시키는 역할에 머무르는게 아니냐는 우려다. 하지만 네루대 경제학과 자야티 고쉬 교수는 한마디로 "노"라고 잘라 말한다. 고쉬 교수는 "BPO가 인도 경제에 중국 제조업 만큼의 파급효과가 없다는 등 부정적 견해가 없지 않지만 BPO로 인해 외국자본이 유입되면서 없던 중산층이 생겼고 실업이 줄었고 소비가 살아나고 있다"면서 "현재 1%에도 못미치는 세계 BPO시장 점유율이 5%까지만 올라가도 5백억달러 상당의 매출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낙관했다. 뭄바이ㆍ방갈로르=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