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두뇌의 이공계 기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는 목소리가 일치한다. 그런데도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공계 문제가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경제신문사가 '스트롱 코리아(STRONG KOREA)' 운동을 점검 평가하기 위해 마련한 특별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미래 성장을 위한 유일한 대안은 과학기술"이라며 "과학기술 입국을 국가목표로 삼아 이공계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경 회의실에서 최근 열린 이번 좌담회에는 조완규 한경 이공계 살리기운동본부 위원장(한국생물산업협회장), 이상희 한나라당 의원,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했다. 좌담회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 참석자 ] 조완규 < 한경 이공계살리기 운동본부위원장 > 이상희 < 한나라당 의원 > 윤종용 < 삼성전자 부회장 > ----------------------------------------------------------------- 조완규 한경 이공계살리기운동본부 위원장 =한국경제신문사가 이공계 살리기 운동으로 스트롱코리아 사업을 펼친지도 1년6개월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이공계문제 해법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많은 대책들이 실제로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폭넓은 논의의 장이 마련돼야 합니다. 학생들의 의식구조 조사 등을 통해 이공계 기피 원인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필요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단순히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선진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3만달러 수준에서 이공계 기피현상을 겪은 반면 우리나라는 1만달러도 채 안되는 상황에서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는 선진국 도약을 앞둔 시점에서 핵심 기술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는 얘기로 볼 수 있습니다. 우수 인력이 이공계로 몰리기 위해서는 이들이 미래를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분명하고 가치있는 목표를 제시해줘야 합니다. 이상희 한나라당 의원 =우리나라는 특히 과학적 마인드를 가진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또 국가의 중점목표를 과학기술 육성으로 잡아야 함도 물론입니다. 일본은 '지식재산권 입국', 중국은 '과교흥국(科敎興國)'을 천명하고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발전에 힘을 결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화두는 여전히 민주화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민주화에 못지않게 과학기술 혁신도 중요합니다. 청와대에 과학기술계 원로를 배치시켜 국제적인 기술발전 흐름에 따른 국정 운영방향을 잡아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회 전반의 가치관이 공유되지 않고는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비전이 없습니다. 과학기술 육성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는 공감대가 절실한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공계 살리기도 시급한 일이긴 하지만 과학기술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는 큰 틀에서 함께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국가 지도자의 인식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60년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직접 편지를 써서 외국 과학자를 초빙했고 이후에도 수시로 KIST를 방문할 정도로 과학기술 자립화에 강한 애착을 보였습니다. 영국은 새로운 이민법을 만들어 세금 면제와 교육지원 등을 통해 외국의 우수 과학기술자를 대거 유치,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독일이 기술강국으로 발돋움한 배경에도 과거 사업자금 지원 등 대대적인 특혜를 통해 외국 과학기술자를 대거 영입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같은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삼성은 제도적으로 인사팀에 엔지니어를 배치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은 5년, 10년 뒤의 기술발전 흐름을 고려한 경영계획에 따라 인력채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산담당 부처 등 정부에도 과학기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이 의원 =국가 지도자의 마인드는 정말 중요합니다. 박 전 대통령 시절에 과기처 장관을 지낸 한 전직 관료는 "과기처 장관은 박 대통령이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대통령이 부산에 내려갈 때면 꼭 한독공업고에서 기관장 회의를 열었을 정도니 각 부처가 과학기술 육성에 전폭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통금에 안걸리는 사람으로는 경찰과 중앙정보부 요원 외에도 KIST 연구원이 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위상이 높았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과학기술인들이 기술개발을 위해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 위원장 =역대 대통령은 모두 과학기술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과학기술을 제대로 육성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과학기술자문회의가 처음 설립됐을 때 6∼7개월의 작업을 거쳐 과학기술육성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은 이를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일선 행정부처에서 막연히 예산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정책을 입안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사안들이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예산처 등 각 부서에도 과학을 아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윤 부회장 ='기술중시' '인재중시'가 평범한 것 같지만 삼성전자의 오늘이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삼성전자 6만여명의 인력 가운데 이공계는 35%선인 2만2천명에 이릅니다. 중역의 50%가 이공계며 최근에는 채용 인원의 90%를 이공계가 차지했습니다. 지난날 선진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애쓸 때는 외국 학위자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면서까지 인력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의원 =시장경제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가 큰 과제입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머리 역할을 해야지 꼬리가 돼서는 안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도 중국의 사례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참석했던 한ㆍ중 회의에서 당 서기장을 비롯한 중국측 지도부가 과학기술과 관련된 전문적인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어내는 걸 봤습니다. 그러나 우리측 참석자들은 대부분 제대로 대화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조 위원장 =이공계 기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법이 나왔지만 근원을 분명히 파악하는게 중요합니다. 단순히 지원 학생 수가 적다는게 아니고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로 진학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서울대도 국제 수준에서 보면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우수 학생들은 모두 외국으로만 가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사후과정 학생들이 한 달에 겨우 60만원가량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공계학생 공백 현상은 심각해질 것으로 봅니다. 우수 학생들이 이공계에 진출하도록 유도하는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 의원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이벤트 사업을 마련하는게 효과적입니다. 미국은 아폴로 11호, 중국은 유인우주선 발사를 통해 과학기술에 관한 국민적 관심을 끌어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같은 국가 이벤트를 오히려 돈을 낭비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병역문제도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은 군대가 곧 연구개발의 중요한 창구가 되고 있습니다. 인재들이 군에 입대해서도 마음껏 첨단기술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2년여 동안 묶어버립니다. 기술장교제 등을 통해 우수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윤 부회장 =군에서 2년 동안만 소프트웨어나 정보기술 교육을 시켜줘도 우수 실무인력을 대거 확보할 수 있습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도 원래는 공병학교였으며 이들이 기술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조 위원장 =유능한 학생들이 이공계에 진출해 우리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모두가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리=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