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MachineㆍMy Area' 경영 ]
"반장님, 노멀 파라핀 설비의 1번 펌프가 서버렸습니다."
"당황하지 말고 어서 보조펌프를 가동해. 서둘러."
태풍 '매미'가 몰아치던 지난해 9월
이수화학 온산공장.
기계설비 사이사이로 휘몰아치는 바람소리가 귀를 찢을듯 몰아쳤다.
철탑을 엿가락처럼 휘게 만든 매미의 순간풍속은 초당 48m.
오전 8시부터 비상대기하던 이수화학 온산공장 현장직원들은 칼바람에 맞서 사투를 벌였다.
모든 걸 집어삼킬듯 부는 바람은 공장의 전원을 수시로 꺼트렸던 것.
석유화학산업의 특성상 정전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파이프 사이를 흐르던 원료가 굳으면 이를 모두 긁어내야 하는 데다 정상화에만 1주일 가까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루 매출 손실만 5억원이 불가피한 상황.
평소 4조3교대로 출근하던 현장직원들은 이날은 예비조까지 출근하는 등 한 명의 열외도 없이 기계에 매달렸다.
68회나 계속되던 순간정전에 맞서 설비보전에 나선 것.
기본모터나 컴프레서가 정전되면 곧바로 보조모터나 컴프레서를 가동시키고 보조모터가 고장나면 기본모터를 다시 켜는 등 수시로 전원을 바꿔줬다.
오전부터 벌였던 사투는 밤 12시가 다 되어 바람이 잦아들면서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이수화학에 원료인 등유를 공급하던 인근의 정유업체는 단전에 따른 피해로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입어야 했다.
하지만 이수화학은 본관 옆 게시판이 파손되는 등의 부분적인 손실에 그쳤다.
"평소 설비를 자기 몸처럼 아끼던 '자주보전활동' 덕분에 가능했던 일"(손영익 품질개혁팀장)이라고 이수화학 관계자는 말했다.
◆ 기계를 내몸같이
이수화학이 자주보전활동을 도입한 것은 지난 93년.
'TPM(Total Productive Maintenanceㆍ전원 참가에 의한 생산보전 활동)'의 한 갈래로 벌써 10년째 진행되고 있다.
작업 및 업무환경 개선활동부터 시작해 공정개선, 손실 최소화 활동 등을 직원들이 앞장서서 하고 있다.
온산공장의 기계들엔 저마다 담당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청결과 정비상태 등을 점검하는 점검표엔 한 달에 한 번꼴로 이뤄지는 검사에서 합격했음을 알리는 파란 딱지가 7∼8개 붙어 있다.
'My Machine' 제도는 직원 1인당 5개 안팎의 설비를 담당하고 있다.
직원들은 부서별로 청소를 담당하는 'My Area'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30분 동안 모두가 자신이 맡은 지역을 청소해야 한다.
본관 국기게양대 앞 화단에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공장장의 모습도 매주 볼 수 있다.
"처음엔 불만이 많았지만 몇년째 하다보니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이경표 부공장장ㆍ전무)
기계를 닦고 청소를 하다보니 점검이 수시로 이뤄졌고 사소한 결함도 조기에 발견해 고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기계설비에 대한 직원들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공정을 개선할 수 있는 요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원가절감을 위해선 어떤 부분에서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는지도 깨닫게 됐다는게 이수화학측의 설명이다.
TPM 활동을 도입한 94년에 비해 지난해에는 △공장의 종합효율 5% 향상 △노동생산성 50% 향상 △공정 고장발생 건수 85% 감소 △고객 클레임 제로(0) 달성 등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윤활유 등이 흘러 질펀하던 공장 바닥은 먼지가 휘날릴 정도로 깨끗해졌다.
덩달아 작업환경도 훨씬 개선돼 직원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덕분에 이곳은 14년째 무재해를 달성하고 있다.
◆ 경영자가 노조 집행부 역할
이수화학 온산공장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기존 노조는 99년 해체했다.
임재경 공장장(부사장)은 "경영자가 나서서 근로자가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찾아서 먼저 해결해 주는 등 '노조 집행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장개선을 위한 설비나 환경 개선을 요구하면 바로 시정조치가 이뤄지고 사후결재되도록 지원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임금 등 현안은 회사의 경영상태와 동업종 타기업의 수준, 회사의 지급능력 등을 감안해 노사협의회에 제시하면 거의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고 한다.
울산 석유화학단지 내 19개 업체 가운데 생산능력이나 이익 수준이 7번째인 이수화학은 지난해 8% 임금을 올렸고 노측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고 임 공장장은 전했다.
이같은 노력들이 보태지면서 이수화학은 장치산업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산업자원부가 주는 품질경영상을 받았다.
오는 2005년엔 품질경영대상을 받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울산=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