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더군요…" 정부의 한 기관에서 도쿄에 파견 나와 있는 C씨.그는 굳이 도쿄를 다녀가야겠다며 일본측 제휴기관 방문을 주선해 달라고 협조요청을 해왔던 서울 본부의 직원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대사는 '예산 청소'.쓰고 남은 예산을 처리하기 위해 급조된 연말 해외 출장임이 분명했다는 것이었다. "벼락 스케줄을 잡으려니 면담이 될 리 없지요. 더구나 일본 측 실무자들은 자료와 통계가 모두 홈페이지에 있는데 왜 오려 하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입니다." 분위기를 눈치 챈 서울 쪽에서 계획을 취소해 없던 일로 끝나긴 했지만 12월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일본 출장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이 C씨의 귀띔이었다. C씨의 말을 종합해 보면 단기 출장지로 일본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별 다른 준비 없이도 후딱 다녀 갈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벤치마킹 가치다. 보고서에 일본 사례를 양념처럼 끼워 넣는 관행에서 일본 출장은 '학습' 명분을 그럴싸하게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치밀한 일처리 문화에 비춰 볼때 급작스런 방문은 인사치레 차원의 면피성 응대에 그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양측의 준비가 대조적이더군요. 한 쪽은 서류 뭉치를 잔뜩 들고 나와 앉아 있고, 자신들끼리도 자주 확인을 하던데 서울 손님들은 서류도 가방도 가벼워 보이고." 한·일간 회의에 수없이 참가했던 한 동시통역사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일본에 내리는 출장·연수자들의 각오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철갑옷과 지퍼로 무장한 일본인들은 예산 소화성 출장을 손금 보듯 읽고 있다. 연 1백5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내면서 선심성 출장으로 외화를 뿌린다면 일본 따라잡기는 새해에도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