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논문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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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과학자가 남의 논문을 8건이나 표절한 사실이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의해 폭로됐다는 소식이다.
국내 교수 3명이 미국 학술지에 기고한 공동논문이 캐나다 학자 논문을 베낀 걸로 밝혀져 망신을 당한지 2년여만에 다시 불거진 지식도둑 사건으로 씁쓸함을 넘어 낯 뜨겁기 짝이 없다.
국내학자의 논문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는 건 연구성과의 질보다 양을 기준 삼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평가풍토 탓도 있겠지만 표절에 대한 도덕불감증 탓이 더 커 보인다.
우리 사회에선 이상하게도 슈퍼마켓에서 라면 몇 개만 훔쳐도 처벌받는 것과 달리 남의 글이나 피땀 어린 연구결과를 슬쩍하는 일은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치부되는 일이 잦다.
중ㆍ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까지 여기저기서 베끼거나 인터넷 글을 짜깁기해 점수받는 일을 개의치 않고,남의 책이나 논문을 베낀 사람이 별 제약을 받지 않고 버젓이 나다니는 일도 적지 않다.
표절에 관한한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돌 던지기 어렵다는 식의 너그러운 의식 때문에 때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만 우습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표절은 누가 뭐래도 못된 도둑질이다.
표절의 기준은 정확하게 단정짓기 어렵지만 학술논문의 경우엔 일단 '따옴표나 인용 표시 없이 어떤 구절이나 문장을 옮기거나,참고문헌을 밝히지 않고 개념이나 주장을 사용하면 표절로 친다'고 한다.
홍성욱 교수(서울대)는 서양에선 학부 때부터 이같은 지침에 대해 철저히 교육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아 유학생들의 경우 여기저기서 따오고 괜찮다 싶은 주장들을 엮어 리포트를 쓰는데 그러다 걸리면 자칫 잘린다며 따라서 이는 "자신도 모르는 새 러시안 룰렛을 돌리는 셈"이라고 말한다.
사건 당사자인 P박사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 5년간의 박사후과정을 거쳐 국내 대학에 임용됐으나 논문 표절사실이 알려져 한 학기만에 그만둔 뒤 잠적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도 그의 행위가 용서되긴 어렵겠지만 그가 공부에 들인 긴 시간을 생각할 때 '차라리 문제가 일찍 터졌더라면' 싶은 건 나만의 생각일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