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글로벌 시대를 맞아 기술경영은 이제 CEO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으로 떠올랐다. 기술경영을 모르고는 기업을 경영할 수 없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사는 과학기술부,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와 공동 제정한 "올해의 테크노 CEO"상을 지난해 말 수상한 노기호 LG화학 사장(대기업 부문)과 변대규 휴맥스 사장(중소기업 부문)을 초청,"테크노 CEO의 역할"이란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노 사장과 변사장은 "기술 흐름을 모르고는 미래에 대비할 수가 없다"며 "기술경영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서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노 사장과 변 사장의 대담 내용을 간추린다. [ 노기호 LG화학 사장 ] ◇1947년 서울 출생 ◇한양대 화학공학과 졸업 ◇LG화학 중국지역본부장,LG-다우 폴리카보네이트 대표,LG화학 대표(현) ◇한국RC협의회장,연세대·한양대 겸임교수 [ 변대규 휴맥스 사장 ] ◇1960년 경남 거창 출생 ◇서울대 제어계측과 졸업 ◇건인시스템 대표,휴맥스 대표(현) ◇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벤처리더스클럽 회장 -------------------------------------------------------------- △노기호 LG화학 사장=오늘날 우리 시대의 키워드와 사업 경영의 핵심은 '디지털'입니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언제 어느 영역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타날 지를 예측하기가 어려우며 기존 기술의 변화 속도 역시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러한 신기술은 단기간에 시장 구도를 바꿔버릴 만큼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회사 경영에 있어서 기술 부문이 사업의 성패까지 좌우할 수 있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기술을 이해하는 경영자의 역량이 더욱 크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변대규 휴맥스 사장=급속한 글로벌화로 인해 기술과 경영을 접목한 기술경영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을 잘 모르고서는 기업이나 국가 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국가와 기업 경영에서도 이제는 과학기술 지식에 경영을 접목시킨 테크노 크라트나 테크노 CEO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추세는 점차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로 다가올 것입니다. △노 사장=물론 테크노CEO가 신산업의 등장과 함께 시대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 산업의 성장에 따른 놀라운 경영 성과로 인해 많은 찬사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회사의 경영자를 평가할 때에는 단기간의 재무적 성과 이외에도 미래에 대한 준비,즉 장기적인 비전에 관한 내용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잭 웰치,빌 게이츠 등 CEO들도 단기간의 성과 보다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미래의 수익사업을 준비했기에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변 사장=테크노 CEO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하는 시대적 흐름과 실제로 테크노 CEO들이 얼마만큼의 경영성과를 내고 있느냐는 문제의 상관 관계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식정보화 사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이러한 사회에서는 기업이나 국가 할 것 없이 모든 사회단위에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능력을 갖춘 CEO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노 사장=테크노 CEO의 요건은 첫째 내부 기술역량의 파악과 외부 기술동향의 이해에 바탕을 둔 기술경영 마인드를 갖는 것입니다. 지적 호기심과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기업의 성장동력을 찾아내고 이를 경영성과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둘째 세계적 시각과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함양입니다. 글로벌 경쟁시대에서는 문화적 다원성과 서로 다른 국가체제에 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 유연한 의사결정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이 필수입니다. 셋째는 이공계 분야 육성 및 발전을 위한 사회적 책임입니다. 이공계를 전공하는 게 사회적 부와 명예를 쌓을 수 있는 기회라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심어줄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변 사장=테크노 CEO는 경영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급변하는 정보기술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테크노CEO가 되려면 경영적 마인드와 이해도가 충분히 뒷받침되어야만 합니다. 기술뿐만 아니라 시장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불확실하고 도전적인 상황 속에서도 변화의 흐름을 짚어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노 사장=현재까지는 주로 구조조정,인수합병(M&A),혁신 활동 등을 통해 기업을 새롭게 탈바꿈시켜 좋은 재무성과를 창출한 CEO가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업 변혁의 초점이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위한 신규 역량 확보와 그에 걸맞은 기업문화의 육성에 맞춰질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향후에는 기업 혁신,신제품 개발 등에 관한 능력은 물론 이들 요소의 균형을 맞추며 강력한 실행력을 보일 CEO가 많이 육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지식과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는 기업문화,동료간에 서로를 신뢰하는 기업 문화를 이끌어내는 CEO가 각광받을 것입니다. △변 사장=유연하고 탄력적인 사고와 행동,과감한 도전정신을 가진 테크노CEO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들 엔지니어 출신,이공계 출신이라고 하면 융통성 없고 타협하기 힘들다고들 하는데 반대로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하는 특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리더로서의 용기와 소신,경영감각,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면 훌륭한 CEO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노 사장=입사 후 사업기획 및 제품 개발,구매,신사업 등 분야 업무를 하는 데 엔지니어로서의 전문 지식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재무 회계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 부족으로 인해 중견 관리자가 되고 나서는 힘든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부족한 분야에 대해서는 개인적 학습이나 사내 교육,현장 경험 등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변 사장=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틈나는 대로 경영학 등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읽었던 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경영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경영의 근간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휴맥스라는 회사를 이끌어 오면서 실수를 통해 나름대로 체득한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영상의 의사결정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 때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배우는 기회로 활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노 사장=이공계 기피 현상이 지속된다면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술의 대외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기술의 대외의존도가 높아지면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리더가 되는 일 또한 멀어지게 되며 심할 경우에는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지금은 창조적이고 우수한 기술을 많이 보유한 기업만이 시장을 선도하는 무한 기술경쟁 시대입니다. 최근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이같은 점에서 기업가 입장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변 사장=역동적이고 발전하는 사회는 다수의 젊은 인재들이 '가치창조형' 일에 도전하는 사회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창조형 일이란 것이 땀과 노력에 비해 수입이나 직업적 안정성 등 경제적 측면에서는 큰 이득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현실적으로 이공계에 대한 낮은 사회적 대우와 인식 등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노 사장=이공계 기피현상은 공부하기 힘든 것은 다 마찬가지인데 돌아오는 것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인식이 확산된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의 해결 방안은 이공계 출신들이 부와 명예를 쌓을 수 있는 길을 넓혀주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도 전반적으로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실리콘밸리 등의 고급 두뇌 집단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기업들이 고급 인력에 대한 차별화된 대우나 고용 안정 등을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변 사장=단언컨데 이공계 출신이 제대로 사회에서 대우받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한국이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진입하자는 목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할 일은 젊은 인재들이 다시 가치창조형 일에 도전하고 그 일을 통해 보람과 성취감을 가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 시대의 지도층들에 맡겨진 중요한 책무입니다. △노 사장=이공계 후배들은 기초 분야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전공분야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때 배우는 수학 물리 생물 등 기초 공부를 탄탄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연구개발 결과와 주장을 글로 정리해 발표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기획력과 함께 철학적 사고 능력도 키워야 합니다. 목표를 높게 잡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지식 및 경험을 쌓는다면 보다 많은 테크노 CEO들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변 사장=요즘 이공계 위기라고 하지만 본질적으로 본다면 비단 이공계만의 위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문과에서도 모두들 경제적으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만 영위하려고 하지 어떠한 소명의식이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은 드물어졌습니다. 물론 이는 사회적 풍조와 가치관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세태의 한 단면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단순히 여기에 영합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려울 때 깊이 고민하면서 배우고 실패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식과 자세야 말로 가장 필요한 삶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리=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