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많을수록 좋을까. 투자효과를 나 혼자만 거두기 어렵다는 이른바 '외부성'이 있고 '위험성'도 높아 기업들이 충분한 투자를 못한다(시장실패 논리)고 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무시못할 함정도 있다. 정부가 파급효과를 정확히 측정해 예산을 제대로 배분할 수 있을지,'정부 돈은 눈먼 돈'으로 보는 민간 부문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지 않을지 고민하고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논쟁을 좋아하는 경제학자들이 특허제도에 대해서만은 별 이견이 없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쨌든 정부보다 민간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왕성한 경제가 그 반대의 경제보다 역동적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정부의 조직과 역할도 그 상황에 따라 달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기술부총리'가 관가의 화제다. 지난 연말 개각 때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 입각을 계기로 청와대에서 과학기술 정책,산업정책,과학기술 인력 정책 등을 아우를 수 있는 '기술부총리급 역할'을 언급하면서부터다.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등 연구개발 투자가 많은 부처들을 조정해 달라는 주문으로 보인다. 청와대 대변인은 기술부총리 신설을 위한 법 개정은 없다고 했지만 향후 정부조직 개편의 복선이 아니냐는 등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과연 기술부총리는 필요한 것인가. 기술부총리를 주장하는 일각에선 이렇게 말한다. '경제부총리도 있고 교육부총리도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 기술이 주도하는 과학기술 중심 사회로 가자는 것 아닌가. 더구나 이공계 사기도 생각해야 되고….'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부총리가 과연 부총리제의 모형이라고 할만한 것인지,교육부가 부총리 부처로 격상돼 그 전에 비해 실질적으로 뭐가 달라졌고 또 향상됐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 등 산업 관련 부처간 조정이 잘 안된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어느 부처 장관을 부총리로 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그런 식이라면 부총리는 지금보다 더 많이 생겨야 할 것이고,이 다음엔 부총리들간 조정 문제가 불거질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경제정책의 중심이 교육과 연구개발로 옮겨가고 있고,교육과 연구개발은 분리되기 어려운 성질이라고 한다면 기우라고 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저런 측면을 따지다 보면 부총리 이전에 우리가 본질적으로 되돌아봐야 할 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중요하다고 하면 독립적인 행정부처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것이다. 문화 차이도 있고 나름의 대안도 있어서겠지만 미국은 과학기술부가 따로 없다. 영국은 통상산업부 안에 과학기술청이 있다. 프랑스 독일 일본은 교육과 과학기술을 한 부처에서 맡고 있다. 이들 국가는 과학기술을 소홀히 하는가. 하나같이 과학기술 중심 사회를 강조하는 나라들이다. 또 우리처럼 산업자원부(제조업)와 정보통신부(정보통신)로 나뉘어져 있는 국가는 얼마나 될까. 지도를 놓고 한 번 보자.우리보다 뒤처져 있거나 추격하는,그것도 몇 개 안되는 국가들의 편제일 뿐이다. 할 일이 없어지는 부처,할 일을 다한 부처,정체성이 모호한 부처는 제때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 이유를 부각시키려 괜스레 부처간 갈등만 촉발시키거나 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민간 부문의 혁신 마인드와 창의성만 위축시킬 것이 뻔하다. 기술혁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부총리급이니 부총리제를 들먹일 게 아니라 선진국보다 훨씬 많고 중국과 비슷하다는 장관급 정부 기구부터 줄여야 한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