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에게 듣는다] 가네코 마사루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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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보다 2004년이 더 힘겨운 한 해가 될수도 있습니다."
새해 일본 경제에 대해 낙관적 견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지금, 가네코 마사루(金子勝) 게이오대 교수(52)는 아직 경계심을 풀 때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외로운 비관론자다.
지표 상으로 잰 일본 경제는 회복국면으로 가닥을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곪아 있는 환부는 아직 근본적인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게 그의 진단이다.
어렵게 쪼갠 한시간 동안의 대화 도중에도 여섯번이나 울려댄 전화 벨 소리가 그의 바쁜 일정을 짐작케 했다.
인터뷰를 끝마친 그는 학술 세미나 참가를 위해 나고야행 신칸센 열차를 타야 한다며 서둘러 가방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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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일본 경제는 플러스 성장 궤도를 무난히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만.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일본 중앙은행이 발표하는 단기관측지수 등 경기 현상을 재는 대다수 잣대가 긍정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내각부도 실질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1.8%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악재가 워낙 많다는게 내 생각입니다.
일본 경제의 회복 추세는 수출 호조와 기업들의 고강도 구조조정 효과에 힘입은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안으로 곪아 있는 환부를 그대로 떠 안고 새해를 맞았습니다.
은행 불량채권에서 비롯된 금융 시스템 불안과 벼랑에 몰린 지방경제가 그것입니다.
여기에다 미국의 경제 향방은 낙관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안고 있는 불량채권은 규모가 계속 줄고 있고, 금융 시스템도 빠른 속도로 안정되고 있다는게 금융청의 분석입니다.
"불량채권의 비율은 줄고 있지만 시스템 전반의 내용이 문제입니다.
2003년 3월 결산에서 7개 대형은행이 본업으로 올린 순익은 전년보다 오히려 1천3백억엔이 줄었습니다.
수익을 늘리기 위해 은행들이 불량채권 처리를 늦추고 주식, 채권 매각에 적극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소규모 지방은행과 신용조합, 신용금고들이 특히 걱정입니다."
-일본 경제가 진정한 의미의 건강한 체질을 되찾기 위한 처방은 무엇입니까.
"복합적인 요인이 함께 얽혀 있기 때문에 일본 경제의 경쟁력을 높여 줄 수 있는 특효약은 없다고 봅니다.
금융 시스템의 경우 은행들의 불량채권을 획기적으로 정리하고 기업들의 채무의존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악순환은 계속될 것입니다.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정부는 단기 대응식으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할 뿐입니다.
또 하나는 소득, 수입 감소와 자산 디플레에서 비롯된 부작용 및 국가경제의 전체적 볼륨 축소를 막고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사회적 세이프티 네트를 재정비하고 연금 제도도 수술해야 합니다.
연금 보험료를 올리고 급부는 점차 줄여 나가는 식으로 연금 개혁안이 확정됐습니다만 현역 세대의 소득 상한에 맞춰 수급자들이 받을 액수가 달라지는 식으로 변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빈사 상태의 지방 경제도 문제입니다.
일본의 지방 경제는 공공 사업과 해당 지역에 기반을 둔 수출기업들의 호조에 의지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수출 환경의 변화와 제조업 공동화로 이같은 패러다임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지방 경제의 탈출구는 분권화에 있습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어떤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버블(거품)과 막대한 규모의 쌍둥이(무역,재정) 적자, 그리고 초저금리와 감세효과로 떠받치는 현재의 인위적 경기가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80년대 후반 이후를 살펴본다면 미국은 주식과 주택이 번갈아 가며 거품을 일으키는 구조를 답습해 왔습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재빨리 금리를 내려 주택시장의 미니버블을 유도합니다.
FRB가 신속히 대응한 덕에 미국의 금리는 연방 금리가 연 1% 수준까지 떨어지는 등 45년만의 최저치로 내려가 있습니다.
소비 촉진을 위해 감세 카드를 동원했고 이것이 금리 인하와 맞물려 경제 회복의 지렛대 역할을 해냈지만 이러한 약효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의문입니다."
-일본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해외 변수로 중국을 꼽으셨습니다.
"제조업 공동화라는 용어까지 탄생시켰을 정도로 일본 기업들은 생산시설을 대규모로 중국에 옮겨 놓고 있습니다.
수출이 호조라지만 이는 중국에 생산기지를 갖고 있는 기업들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중국은 고도 성장과 소비 팽창으로 일본 기업들의 든든한 안전판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경기 침체 등 갑작스런 난기류에 빠질 경우 일본 경제가 받을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국 경제 불안의 핵심은 소비, 부동산 시장 등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버블과 은행이 안고 있는 거액의 불량채권입니다.
버블은 언젠가 꺼지고 경기는 내리막길을 걷기 마련입니다.
중국 정부가 달아 오른 경기를 어떻게 연착륙 시키는 가에 일본 경제의 내일이 좌우될 것은 분명합니다."
-세계 경제가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주장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현재의 경제 상황은 1930년대 이후 70년만의 세계 동시 불황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과거처럼 패닉에 휘말리면서 세계 경제가 한꺼번에 무너지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금융정책 등을 통한 국제협조의 여지가 넓혀져 있는게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70년 전처럼 전쟁과 테러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는 과거의 장기 정체시대를 상당 부분 닮았습니다.
당시는 선진국들이 블록화된 후 결국 전쟁으로 치달았습니다.
지금도 세계는 분열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버블이 뒤덮힌 세계 경제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가 최대의 초점입니다.
버블은 언젠가 꺼지게 마련입니다.
그 때가 진정한 위기의 시대가 될 것으로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만 바보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자는 역사에서 배웁니다."
-새해 한국 경제를 진단해 주십시오.
"반도체 등 상당수 업종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우수 기업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다이내믹한 성장 에너지가 한국 경제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본다면 소비와 주택의 버블, 그리고 고용의 불안정이 큰 악재입니다.
신용카드와 부동산 값 상승에 의존해 왔던 소비가 개인 부채를 부추겼고 부실화의 원인이 된 것 같습니다.
고용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급속히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용시장 안정을 위한 묘책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 경제도 수출 의존도가 꽤 높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역으로 약점일 수 있습니다.
중국 경제의 버블이 꺼지고 침체 국면에 빠질 때에 대비한 처방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중국, 러시아 시장이 순조롭게 확대되고 있습니다만 이 지역 경제가 하드 랜딩(경착륙)한다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충격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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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52년 도쿄 출생
도쿄대학 경제학부 졸업
동대학원 경제학 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이바라키대학 인문학부 교수
호세이대학 경제학부 조교수
게이오대학 경제학부 교수(현재)
NHK, 아사히TV, TV도쿄 및 문예춘추 등 각종 매체의 컬럼니스트
< 주요저서 >
시장과 제도의 정치경제학
반 경제학
세이프티 네트의 정치경제학
반 글로벌리즘
일본재생론
경제대전환
[ 대담 = 양승득 도쿄 특파원 yangsd@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