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4) "과학기술을 국정중심에 놓아야 2만弗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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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욱 <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
"국가 연구개발과제의 수많은 성공 발표에도 불구하고 연구결과물이 산업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죽음의 골짜기에 빠져 있다…21세기는 융ㆍ복합의 시대로 산업별ㆍ지역별 조합이나 협회가 중심이 되는 기업협의체에 의해 성장이 견인돼야 한다.
민간협의체가 해당 산업의 필요 기술을 발굴ㆍ선정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 대학ㆍ출연연구소가 전략과 힘을 모아 산학연 클러스터를 형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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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출만이 살 길이다'라는 모토 하에 일치단결해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성장잠재력은 바닥이 드러나고 성장시스템은 한계에 봉착해, 8년이 되도록 1만달러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왜 우리는 8년간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는가?
성장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근본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기초를 올바로 다져 2만달러로의 도약을 힘차게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
첫째, '과학기술중심사회'를 국정 최우선 현안으로 두어야 한다.
대통령이 과학기술계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의장을 맡고 있으나 이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많은 회의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과학기술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면, 대통령은 시간의 30%를 과학기술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60,70년대 '수출만이 살 길이다'를 좌우명으로 삼았던 시절, '수출전선의 총사령관'은 수출업체 현장을 수 없이 방문하고, 매월 청와대에서 수출진흥확대회의를 개최하는 등 행정적 지원책을 총동원했다.
21세기 대통령은 '과학기술강국 육성의 총사령관'이 돼 현장을 중심으로 국민의 지혜와 힘을 결집시켜야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자기 경영노트 읽기'에서 대통령과 장군의 명령은 명령 후 현장에 가서 실행된 결과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통령의 새로운 약속, 선언이 아니라 현장경영의 실천이 필요하다.
둘째, 이공계 교육체제를 바로세워야 한다.
지원자가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우수한 인재가 과학기술계를 지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고, 그나마 지원한 인재를 올바르게 육성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국가 백년대계를 그르치는 치명적인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력조사에 의하면, 우리는 상위 학생이 5.7%로 1위국인 핀란드의 18.5%, 일본의 9.9%는 물론 OECD 평균인 9.5%에도 못미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장래는 없다.
교육혁신이 시급하다.
핀란드는 지난 93년 교육혁신을 추진해 평준화의 함정에 빠져있던 교육과정을 적성에 맞는 교육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10년이 안돼 국민소득 3만달러 국가가 됐다.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하려면 우선 초ㆍ중ㆍ고교의 일률적이고 평준화된 교육체제를 적성 및 능력에 맞는 교육체제로 개편해야 한다.
대학교육에서는 먼저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10개 정도의 연구중심대학을 산학연 클러스터의 중핵(Center of Excellence)으로 확실하게 조기 육성해 글로벌 과학기술 리더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
관련 부처들이 모두 협력해 연구중심대학에 집중 투자, 우수한 원천기술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셋째, 기술혁신형 중소기업과 벤처의 육성을 추진해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지역균형발전을 실현시킬 주체이자 국가 산업의 근간이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실상을 보면 1인당 부가가치생산액은 대기업의 30%, 1인당 연구개발비는 대기업 대비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선진국들은 중소기업을 고용과 혁신의 주체로 재인식하고 80년대 이후 활발한 창업으로 고용 및 이노베이션을 창출하고 있다.
영국 대처 정부는 80년대 초 중소기업을 경직된 국영대기업을 대신할 차세대 경제동력으로 인식, 지원책을 대폭 확대했고, 미국 레이건 정부는 82년 중소기업 정책의 핵으로 중소기업 기술혁신제도(SBIR)를 창설했다.
반면 우리는 96년 공업진흥청에서 중소기업청이 분리ㆍ개편됐으나, 중소기업을 산업정책의 중심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벤처기업도 첫 단추를 잘못 끼워 투기가 난무하는 결과를 낳았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얻은 교훈을 결코 헛되이 해서는 안된다.
더 늦기 전에 벤처와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재정립하고 행정부처의 총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가출연연구소의 역할과 기능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공공복지기술, 기초과학기술, 첨단산업기술을 개발하는 국가 대표 연구소를 제외하고는 독일 산업연구협회연합회(AIF)처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특화된 연구소로 발전시켜 중소기업이 기술혁신형으로 탈바꿈하는데 필요한 기술의 씨앗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이제는 민간주도형, 수요자 중심의 기술개발로 가야 한다.
5조원의 거대한 국가 R&D 예산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및 자체 기술력을 갖춘 일부 중견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쇠퇴하고 있다.
이는 산학연 협력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가 R&D 과제의 수많은 성공 발표에도 불구하고 연구결과물이 산업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죽음의 골짜기에 빠져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70,80년대가 개별 기업에 의한 성장이었다면, 21세기는 융ㆍ복합의 시대로 산업별,지역별 조합이나 협회가 중심이 되는 기업협의체에 의한 성장 견인이 필요하다.
민간협의체가 먼저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해당 산업의 필요 기술을 발굴ㆍ선정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 주체인 정부, 연구개발 주체인 대학ㆍ출연연구소, 인재 양성과 기초과학기술 확보 주체인 대학이 한 방향으로 전략과 힘을 모아 산학연 클러스터를 형성해야 한다.
정부에서 국가 R&D 사업의 추진 주체를 산업별, 지역별 협회, 조합으로 선언하고 자주적 노력을 하는 민간협의체에 정부가 매칭펀드를 내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국민소득 1만달러로 가는 것과 2만달러로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관 주도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려면 새 각오로 진정한 민간 주도 혁신시스템으로 과감히 탈바꿈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과학기술자는 '기술을 위한 기술개발'에 안주하고 '고객가치 창출을 위한 기술개발'은 등한시하지 않았는지, 기술개발과 사업화 사이에 놓여 있는 죽음의 골짜기 극복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목표는 세웠으나 현실안주형 목표를 세웠지 세계 최고ㆍ최초의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니었다.
기술개발은 다른 부문과 다르다는 생각이 팽배해 품질, 원가, 타이밍 등 연구생산성, 기술완성도는 등한시했다.
외부에서 주도하는 타율적 혁신이 아니라 내부에서 스스로 행하는 자율적 혁신이 앞서야 한다.
2004년은 원숭이의 해다.
'손오공'은 자기 재주만 믿고 경솔히 행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부처님에게 잡혀 갇히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크게 깨달은 후부터는 특유의 창의성과 지혜를 발휘해 81가지의 고난을 헤치고 마침내 불경을 구하는 큰 일을 해낸다.
새해를 맞아, 손오공과 같이 산적해 있는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민족 특유의 창의성과 단결력을 발휘해 보자.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 아시아의 용으로 부상했던 것처럼 이제 다시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의 도약이라는 큰 기적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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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45년 경남 밀양 출생
1967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1989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1986년 삼성전기 종합연구소장
1994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실장
1996년 삼성SDI 대표이사 부사장
1997년 한국전지연구조합 초대 이사장
1997년 삼성전관 대표이사 사장
1999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200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심의위원장
2002년 한국공학한림원 최고경영인평의회 운영위원장
상훈 = 과학기술훈장 혁신장(2001년) 등
저서 = 즐거운 품질경영, 4세대 연구혁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