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5ㆍ끝) "교육시장 정부 독점구조 깨야 정상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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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 소설가 >
"노동조합이 노동자 전부의 복지를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는 기업의 이윤과 생산성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노동조합의 활동은 조합이 없거나 힘이 약한 기업의 노동자들로부터 노동조합의 힘이 센 기업의 노동자로 소득을 옮길 뿐이다. 노동조합은 이미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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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가 좋지 않아서 무엇인가 대책을 세워야 할때는 먼저 문제에 대한 진단부터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진단은 실재하는 상태를 정상적 상태와 비교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따지고 보면 어떤 문제에 대한 처방도 정상적 상태로 돌아가는 길에 다름 아니고 서양사회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도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구성 원리로 삼았으므로, 우리에게 있어 정상적 상태란 그런 구성원리들이 잘 지켜지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노동시장 문제는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비효율은 근본적으로 노동조합의 독점적 권리와 정부의 비합리적 규제에서 비롯되었다.
노동조합은 기업의 종업원들이 단체협약을 통해서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려고 만든 결사(結社)다.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은 법에 의해 보장되고, 노동조합이 조직된 기업들에선 노동조합이 노동을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자유로운 경쟁을 이상으로 삼는 자유주의 이념이나 시장 경제 체제에 어긋나는 제도다.
노동조합이 그렇게 특별한 권리를 얻은 것은 예전엔 노동자들의 권익을 충분히 보장할 만한 법적, 사회적 장치들이 부족했고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조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노동조합이 얻으려 했던 것들은 이미 법으로 보장되었고 노동자들의 임금도 시장의 가격 기구에 의해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된다.
노동조합이 '노동자 전부'의 복지를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는 기업의 이윤과 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노조 활동은 조합이 없거나 힘이 약한 기업의 노동자들로부터 조합의 힘이 센 기업들의 노동자로 소득을 빼앗아갈 뿐이다.
아울러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사회안전망이 마련되어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최소한이나마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보면 노동조합은 이제 역사적 사명을 다한 기구라는 사실이 뚜렷해진다.
정부가 기업에 대해 종업원의 복지를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경제 주체들이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경쟁하고 뒤쳐진 사람들은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통해 돕는다는 것이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자신이 할 일을 기업들에 떠넘겨 기업은 생산성과는 관계없이 노동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 정상적 시장 경제 체제에서 벗어난 것이 우리 노동 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다.
비정상적인 상태가 불러오는 비용은 당연히 크다.
임금은 노동생산성과 관련없이 결정되고, 기업들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기업들은 사람 쓰기를 겁내고, 대신 기계화에 투자한다.
사람을 써야 할 경우엔 부담이 적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인력회사로부터 공급받는다.
당연히 기업들은 종업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투자할 마음이 줄어든다.
이도 저도 어려우면 아예 해외로 영업 기지를 옮긴다.
물론 외국 기업들은 우리 사회에 투자하기를 무척 꺼린다.
이런 사정이 바뀌려면 우리 노동 시장이 정상적 시장의 모습에 가깝도록 바뀌어야 한다.
노조의 독점적 권리는 축소돼야 마땅하고 정부가 사회안전망의 설치와 유지를 기업에 떠넘기는 관행도 고쳐져야 한다.
또 하나 좋은 예는 더할 나위 없이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인 교육이다.
우리 교육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교육이라는 재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정부가 교육의 수급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입학시험이라는 배급제도를 통해서 공급하는 데서 기인됐다.
정상적 교육 시장은 각급 학교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면서 다양한 교육 상품들을 내놓고 소비자들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그것들을 자유롭게 고르는 시장이다.
그런 정상적 시장에서 정부가 할 일은 다른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 시장에선 정부가 나서서 아주 단순화된 교육 상품 몇 가지만을 내놓고 소비자들에게 그것들을 사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고 학교들이 다양한 교육 상품들을 내놓는 것을 막는다.
그러다 보니 교육의 내용이 얄팍하고 메마를 뿐 아니라 정부는 정작 자신의 책무인 가난한 소비자들이 최소한의 교육을 받도록 돕는 일엔 마음을 쓸 여유가 없다.
대학 입시에서 낙오된 학생들은 전적으로 '재수'라는 사교육 시장에 맡겨진다.
가장 완강한 고정 관념은 교육이 특별하기 때문에 경제 논리를 적용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교육 또한 다른 재화와 다를 바 없이 경제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교육은 정부가 공급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고정 관념도 잘못 중의 하나다.
이것을 떠받치는 논거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은 공공재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교육을 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함께 쓰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함께 쓰는 것은 구매자의 교육을 누리는 것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므로 교육은 공공재가 아니다.
만일 교육이 공공재여서 배제 가능성과 대립성이 없다면 시장은 교육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할 터이고, 정부가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엄청난 사교육 투자가 가리키는 것처럼 실제 사정은 전혀 다르다.
교육 공급에서 정부가 시장보다 낫다는 생각도 잘못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정부 교육기관들은 특혜를 받지만 그 성과는 사교육 기관들보다 대체로 못하다.
위에서 든 몇가지 고정 관념을 걷어내고 나면 교육 문제에 대한 대책도 이내 눈에 들어온다.
노동시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교육 시장도 정상적 시장에 가까워지도록 하면 된다.
교육은 일차적으로 공급자인 학교들과 소비자인 학생들이 맡고, 그렇게 자유롭고 효율적인 시장이 미쳐 돌보지 못하는 학생들을 가난하거나 경쟁에 실패한 학생은 정부가 돌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유 있는 학생들은 좋은 교육 상품을 누리고, 가난한 학생들은 정부의 집중적 투자 덕분에 지금보다 훨씬 나아진 교육을 누릴 터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처방은 간단하고 또렷하다.
즉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정상적 체제에 보다 가깝게 되돌리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애초에 정상에서 벗어나도록 만든 사회적 힘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들이 많고, 비정상적 상태에서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어서 저항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데는 혁명적 접근보다는 진화적 접근이 현실적이다.
즉 근본적 개혁 조치들을 통해서 단숨에 문제를 풀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체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낫다.
그러면 제도와 기구들이 보다 나은 상태로 진화하도록 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진화의 과정을 생각하면 답은 이내 나온다.
모든 제도와 기구들을 대안들과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쟁이야말로 진화의 수단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다른 생명체들과 경쟁하고, 그런 경쟁에서 살아 남아 자손을 퍼뜨린 생명체를 통해서 개체와 종이 진화한다.
사회적 제도와 기구들도 마찬가지다.
독점 상태에선 갖가지 문제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노동 시장의 문제들은 주로 노동조합이 노동력의 공급을 독점한다는 사실에서 나오고, 교육 시장의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정부가 교육의 공급을 독점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런 독점적 지위를 허물고 경제 주체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는 제도와 기구들이 자연스럽게 진화하도록 만들 수 있다.
경쟁은 잔인하다.
경쟁의 잔인함에 몸서리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경쟁이 자연의 기본 질서임을 인식해야 한다.
경쟁을 피할 길은 없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경쟁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경쟁에서 진 사람들을 보살필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시장경제의 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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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卜鉅一 약력 ]
1945년 충남 아산 출생
1967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70년~1987년 중소기업은행 전주지점 근무, 한국과학연구원 선박연구소 연구개발실장
1987년 소설 碑銘을 찾아서로 등단
주요저서 =높은 땅 낮은 이야기, 역사속의 나그네, 국제어시대의 민족어, 자유주의 정당의 정책, 이것이 시장경제다(공저), 죽은자들을 위한 변호;21세기 친일 문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