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을 볼모로 한 치킨(겁쟁이) 게임.' LG카드 처리를 둘러싼 정부와 채권단,LG그룹 간 줄다리기는 이렇게 표현할 만했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의 엄청난 파괴력을 모두 알면서도 '갈 데까지 가보자'는 배짱으로 밀고당기기를 거듭했다. 지난 6일 밤부터 9일 채권금융기관장 회의가 열리기까지 숨가쁘게 진행돼 온 'LG카드 사태 72시간'을 되짚어 본다. ▶6일 밤 8시,조선호텔="역사를 생각하며 판단해 달라."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채권단 부행장 회의를 소집,정부의 마지막 카드(은행 지원액 1조6천5백억원,산은 지분 22.5%)를 제시한 뒤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말 많았던 채권단도 정부의 '최후통첩'을 받고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7일 금감위 회의실=금감위 및 채권단 관계자들이 언성을 높인다. 골자는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LG그룹을 설득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과 "채권단 내 이견조정을 먼저 하라"는 것. 그리고 한바탕 시간이 흐른 오후 6시30분. 김정태 행장은 국민은행 기자실을 갑자기 찾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LG카드 문제 해결에 협조하겠다"고 사태해결을 암시했다. 그러나 '추가지원 불가'라는 조건을 달아 LG그룹을 다시 한번 압박했다. ▶7일 밤 9시 이후=재경부 및 금감위 국장들이 김진표 부총리 및 이정재 금감위원장에게 "LG그룹을 윗선에서 설득해 달라"고 간청한다. 이와 동시에 언론을 향해 "산업은행 주도의 공동관리(사실상 단독관리)가 사실상 합의됐으며 남은 문제는 향후 LG카드의 추가 자금부족액에 대해 LG그룹이 얼마만큼의 책임을 지는가이다"라고 말해 공개적으로 LG그룹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8일 오후 2시30분=정부는 당초 LG그룹측에 "정오까지 (추가지원에 대한)확답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LG그룹은 "추가지원은 LG계열사의 무한책임을 뜻한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렇게 되자 김진표 부총리,변양호 국장이 일제히 나서 "LG그룹이 협조하지 않으면 부도"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LG그룹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사이 LG카드의 자금은 바닥났다. 결국 2시30분 이후 현금서비스가 중단돼 LG카드의 운명을 결정할 초침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9일 오후 3시=지난 밤(8일) 자정이 되어서야 LG그룹은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추가지원액을 5천억원으로 한정짓고 이 가운데 75%(3천7백50억원)를 LG그룹이 부담하겠다는 것. 사실상 정부와 채권단에 '항복선언'을 한 셈이다. 오후 3시.LG카드의 생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채권단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LG카드의 청산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은행장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은행)요구가 모두 수용됐다.LG그룹측에 고맙게 생각한다(김정태 국민은행장)." 협상이 타결될 것임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국내 최대 카드사인 LG카드의 생사를 결정짓는 지난 72시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긴박한 드라마였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