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시행되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의 영향권에 들어선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들은 벌써부터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당장 올 상반기중 당국에 제출해야 할 2003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과거 분식을 털어내지 않으면 내년부터 대규모 소송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불법자금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과거 분식에 대해 사면불가 방침을 분명히 밝혀 이들 기업은 올해 회계처리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회계법인도 감사인력과 시간을 늘리는 등 엄정한 외부감사를 준비하고 있어 기업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 부실 털어낼 마지막 기회


자산 2조원이 넘는 상장ㆍ등록사는 총 90여개.


이들은 올해 회계처리가 과거 부실을 털어내야 하는 마지막 기회다.


내년에 작성하는 2004년 사업보고서는 바로 집단소송제에 의해 소액주주들에게 소송을 당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과거 부실을 정리할 수도 없다.


분식회계를 해왔다고 자인하는 기업으로 오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의 회계담당자는 "그동안 기준에 맞게 장부를 작성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한다"면서도 "그러나 분식회계 개념이 모호한 현 상황에서 단순 작성 오류까지도 분식으로 몰아간다면 빠져 나갈 기업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일부 잘못을 고치려 해도 금감원 징계와 이에 따른 소송 우려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매년 1월 초 당기순이익 추정치를 내고 배당금을 확정했던 일부 기업들도 과거 손익을 수정해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해 배당정책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회계법인과 회계처리 갈등을 예상, 올해 정기주총을 3월 이후로 미루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 소송 비상 걸린 회계법인


회계법인들은 집단소송제 시행에 극도로 긴장하는 분위기다.


대형 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제2의 대우, SK글로벌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며 "최근 회계 관련 소송이 잇따르면서 '소송 공포증'을 느끼는 회계사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회계법인들은 이에 따라 올해 외부감사를 보다 철저하게 진행, 부실 감사로 인한 위험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최종철 영화회계법인 부대표는 "올해 목표는 영업 확장보다는 감사 품질을 높이는 것"이라며 "회계사에 대한 실무ㆍ정신교육을 강화하고 감사 투입 시간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 논란 빚는 과거 분식 사면


올해 외부감사에서는 회계사와 기업 회계담당자 간의 '밀고 당기기'가 치열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전기오류 수정손익' 등의 항목을 통해 기업들이 과거 분식을 털어낼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오류 수정손익은 전년도 회계처리상 실수 등으로 잘못된 재무제표상 수치를 대차대조표의 전기이월 이익잉여금에 반영하는 것이다.


안건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회사측의 고의적인 분식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지만 감사과정에서 오류가 드러나면 가장 무난한 방법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계속감사인은 전기오류 수정을 통해 과거 감사 내용을 쉽게 뒤집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도 집단소송을 피하기 위해서는 과거 분식을 털어내야 하지만 이 경우 신용도 하락과 손해배상 소송 등이 예상되는 만큼 금융 당국의 사면 불가 방침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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