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최북단 '강화 교동도'] 북녘땅 손뻗으면 닿을듯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섬의 서북단 망향대에서 북쪽을 보면 연백평야로 유명한 황해도 연백 땅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연안까지의 거리는 불과 3.5km.
옛날에는 나룻배를 타고 장을 봐오던 곳이다.
섬의 동북쪽 맞은 편엔 황해도 개풍군이 8.5km 거리에 있다.
연백이나 개풍에서 넘어온 실향민들은 그래서 이곳 망향대가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최북단이다.
이 섬이 바로 강화군 교동도이다.
강화도에 딸린 섬이라면 대개 보문사가 있는 석모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교동도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석모도에 비해 섬이 크고 유서도 깊지만 휴전선의 남방한계선에 걸려있는 민통선 지역인 탓이다.
석모도행 배는 외포리에서 떠나지만 교동도에 가려면 창후리에서 배를 타야 한다.
밀물 때에는 15분 정도면 가지만 썰물 때에는 40분 가량 걸린다.
오전에 배를 타니 밀물 때여서 차량과 사람을 가득 실은 배가 움직이는가 싶더니 벌써 교동도 월선포 선착장이 눈앞이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교동도는 역사가 깊다.
고구려 땐 고목근현으로 불렸고 고려 때 삼별초의 대몽항쟁을 이끈 김통정이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송도와 한양의 관문으로 중국을 왕래하는 무역선의 교통로였고,안향이 원나라를 다녀오면서 공자의 상(像)을 가져와 교동향교를 처음으로 세웠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이 유배돼 죽음을 맞이한 곳으로도 알려져있다.
차에 탄 채 배에서 내려와 교동면 읍내리의 교동향교로 향한다.
야트막한 화개산 자락에 자리잡은 교동향교는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 선생이 공자상을 처음으로 들여와 봉안한 곳.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등이 있으며 공자 맹자 주자 등 유학의 성현들을 모시고 있다고 하나 문이 잠겨 내부를 둘러볼 수 없다.
발걸음을 연산군 유배지로 돌린다.
역시 읍내리에 있다.
조선 인조때 쌓았다는 둘레 4백30m의 교동읍성 남문의 홍예를 지나 마을 뒤편 언덕빼기로 오르자 '연산군 적거지'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연산이 살았다는 집터 앞에 우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우물 안에서부터 몸을 비틀며 솟아오른 오동나무 한 그루가 오롯하다.
집터 옆에는 연산군의 화상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부근당이 있고,수령이 3백10년이 된 높이 25m,둘레 7m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읍성의 성곽 위에 떡 버티고 섰다.
이밖에도 교동도에는 화개산봉수대와 화개산성지,고구리 산성지,삼도수군통어영지 등의 역사유적이 즐비하다.
지난 76년에 완공된 고구리저수지는 사계절 내내 붕어가 잘 잡히는 낚시터로 각광받는 곳.
최근에 만든 난정리 저수지는 겨울 낚시터로 이름을 얻고 있다.
죽산포 호두포 율두포 말탄포 북진나루 등 포구와 나루터도 유난히 많아 섬 전체가 유적지요 관광지다.
.............................................................................
[ 여행수첩 ]
교동도에 가려면 김포에서 48번 국도를 타고 강화읍을 지나 신봉리에서 301번 지방도로 좌회전,창후리 선착장으로 가면 된다.
창후리 선착장(032-933-4268)에선 차를 실을 수 있는 훼리호가 운행되는데,아침 7시30분 첫배를 시작으로 오후 5시까지 30~4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운임은 편도기준 1인당 7백50원,승용차는 1만2천원.
섬에서 나올 때에는 막배 시간이 이르므로 미리 확인해 최소한 30분 전에는 월선포 선착장에 도착해야 한다.
민통선 지역이라 창후리에서 배를 탈 때 승선신청서를 써야 하므로 주민등록증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월선포 선착장에 섬 안내판이 있지만 섬 안에는 지정문화재 외에는 안내판이 거의 없어 미리 정보를 확보해두는 게 편리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