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라는 원생동물은 유연하다. 내부의 세부질은 기체 입자와 같은 졸(sol), 외부는 액체성의 물컹한 겔(gel) 조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외질과 내질이 자유롭게 바뀐다. 동시에 졸화-겔화의 전환이 재빨리 진행된다. 아메바는 이를 통해 분열과 결합도 자유롭게 해낸다. 구미공단에 자리잡고 있는 반도체 전문업체 KEC(옛 한국전자). 지난 8일 오전 곽정소 회장 주재로 기획 생산 품질 영업 등의 주요 그룹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열렸다. "'변화와 개혁'이라는 경영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올해 아메바 경영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입을 뗀 곽 회장은 "아메바의 자유롭고 유연한 운동원리를 기업경영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인철 구미사업장장(상무)이 부연설명에 나섰다. "환경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며 번식(성장)해 나가는 아메바가 KEC의 새로운 성장모델입니다. 국내 어떤 기업도 시도해보지 않은 길이지만 모두 합심해 저력을 발휘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회의장에는 지난 2000년 현장에 6시그마를 처음 도입할 때처럼 긴장감이 넘쳐흘렀다. 아메바 경영은 아메바의 생존방식처럼 조직을 최소 단위로 분리해 수익을 올리는 시스템으로 일본의 대표적 전자부품회사인 교세라의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에 의해 만들어진 '소집단 부문별 채산제'가 원조 격이다. 생산 라인에서 공정별로 10명 전후의 아메바라고 불리는 '프라핏 센터(profit center)'가 이익을 관리하는 경영기법이다. KEC가 이를 도입하겠다고 나선 것은 6시그마나 TPM을 통한 '고전적인' 생산혁신 기법이 이미 성숙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반도체사업 경쟁력의 원천인 수율 향상은 만족할 만큼 이뤄졌지만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 전자업계에서 항구적인 생존을 이어가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창출해낼 수 있는 '카멜레온'식 혁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각 아메바의 리더는 소규모 생산라인의 경영자로서 조직원들을 먹여살릴 의무를 지닌다. 양질의 자주적인 리더들이 많을수록 성공 가능성은 높아진다. 구성원들은 상호 협력과 목표 달성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리더의 자주적인 판단과 능력 위주의 인사 시스템, 합리적이고 투명한 절차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 상무는 "KEC는 그동안 축적된 혁신노하우와 임직원들의 자주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이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준비가 돼있는 기업"이라며 "현재 6개 공장별로 이뤄지고 있는 독립채산제는 연말쯤에 수십개의 아메바 조직으로 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에선 어셈블리 기술그룹(ASSY)의 정민섭 기정(과장급)과 3명의 팀원들이 지난해 초 트랜지스터 칩에 씌우는 합성수지(EMC)의 이용률이 떨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금형공정 과정에서 연간 1천t의 EMC가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이들은 '계획보전 분과위원회'에 이를 보고했고 곧 TPM의 전통적인 '현상조사-평가-요인 분석-원인 박멸-사후 측정'의 시스템이 가동됐다. 모든 것이 백지에서 검토됐다. 고가의 설비 교체도 배제하지 말라는 지시도 내려왔다. 관리직과 생산직이 합동으로 참여한 분과위는 △금형 기계의 중심부 깊이 감소 △금형 사이즈 축소 △수지가 지나가는 통로 형상 변경 등의 방안을 찾아냈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세밀한 점검 사안들을 놓치지 않았고 한 사람의 고민을 모두의 고민으로 여겼다. 공정 변경 후 품질에 영향이 없다는 점도 꼼꼼히 챙겼다. 최남수 TPM 사무국장(기감)은 "EMC 활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여 월 1억원이 넘는 비용절감 효과를 거뒀다"며 "팀원들의 강한 혁신의식과 상호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쉽게 고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사례에서 보듯 KEC가 꿈꾸고 있는 아메바 경영의 귀착지는 구성원들의 강력한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는 '토털 경영'의 구현이다. 10∼20여명의 구성원들이 기계적인 분업이나 협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매-생산-판매에 이르는 전 단계에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생존에 필요한 조건들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우 상무는 "톱 다운(Top Down)과 보텀 업(Bottom Up)의 조화야말로 아메바 경영의 요체"라며 "이는 KEC의 오랜 기본 정신이자 전통"이라고 강조했다. 구미=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