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번호이동성제도 성공하려면 .. 成樂逸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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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행에 들어갔다.
며칠사이 수만 명의 SK텔레콤 가입자가 KTF나 LG텔레콤으로 통신업체를 바꾸었고,이용금액에 따라 요금을 할인해 주는 약정할인제도 속속 도입돼 이동통신 3사간 가격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지난 90년대 후반 PCS사업자가 통신시장에 진입하면서 불붙었던 이동통신 마케팅전쟁이 다시 재연될 조짐이다.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제도는 업체간 시차를 두고 적용돼 내년 1월에 완전히 정착된다.
이 1년 동안 후발업체는 선발사업자의 가입자를 최대한 끌어오기 위한 시장쟁탈 전략에,선발업체는 1년을 버틸 방어 전략에 골몰할 것이다.
그동안 통신시장에서는 선발업체인 SK텔레콤으로의 쏠림 현상이 지속되어 왔다.
이는 다른 선진국에서 시장 경쟁이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SK텔레콤의 매출액 기준 시장점유율은 2003년 3분기 기준으로 61.4%에 달했으며,순증 가입자의 92.3%를 차지했다.
이익 규모도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있으나,후발사업자는 여전히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정부가 업체간 시차를 두고 번호이동성을 도입한 배경도 이 같은 불균형 경쟁에 대한 우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면 번호이동성 제도는 정부의 기대처럼 통신시장의 경쟁상황을 호전시킬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꼭 긍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선발업체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될 소지도 없지 않다.
선발업체의 시장지배력은 우리 이동통신시장의 구조적 요인에 의해 생겨났으며 그 구조적 요인은 하나의 제도만으로 쉽게 제거될 수 없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선발업체면서 장기간 독점기업이었다.
1980년대 이동전화 서비스 초기부터 경쟁체제를 도입한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 시장에서는 1990년대 후반에야 후발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했다.
경쟁도입이 늦어지면서 대다수 대량이용고객은 선발업체의 몫이었다.
이동전화는 또 유선전화에 비해 고급서비스이기 때문에 가격도 높았다.
선발업체는 안정적인 사업기반과 막대한 자금력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경쟁제한적 요소가 뚜렷했던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기업결합은 시장의 경쟁상황에 치명타를 날렸다.
이 기업결합을 통해 SK텔레콤은 디지털 셀룰러 주파수를 독점했다.
디지털 셀룰러 주파수는 PCS 주파수보다 생산비용 측면에서 우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선발업체의 가격경쟁력은 후발업체에 비교해 구조적으로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번호이동성 제도는 선발업체의 고객이 자신의 번호를 바꾸지 않고 후발업체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고객은 통신업체를 바꿀 때 번호뿐 아니라 단말기,멤버십 제도,마일리지,회사 평판도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다.
번호이동성 제도는 이중 한 가지만을 해결해 주었을 뿐이다.
선발사업자는 여전히 우량 주파수를 독점하고 있다.
1년 후 번호이동성이 완전히 정착되면 가입자 확보경쟁은 오히려 단말기가 호환되는 두 후발사업자간에서 더 치열해질 공산이 크다.
경쟁효과가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대책이 수반돼야 한다.
무엇보다 재판매 등을 활성화해 우량 주파수를 다른 사업자가 활용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거나,주파수 효율성에 따른 생산비용 격차를 정책적으로 해결할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선발업체의 시장지배력에 상응하는 규제제도도 재정비돼야 한다.
지금처럼 선발업체가 후발업체와 동일한 마케팅 수단을 갖고 경쟁한다면 그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과 같다.
정부는 그간 선발과 후발업체에 대한 차별적 규제정책을 유선통신시장에 적용한 바 있다.
정부는 유선통신시장 못지 않게 이동통신시장의 유효경쟁을 위한 규제정책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부 정책으로 인해 이동통신시장의 경쟁구도가 규정됐다면,그 폐해를 해결하는 것도 정부의 책임이다.
nisung@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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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