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권 발행 등 화폐제도 개편 방안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고액권 발행 위조방지 신권 발행 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절하) 등 세 가지 화폐 혁신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데 이어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이 가운데 고액권과 위조방지 등 두 사안에 '원칙 찬성'을 밝힘에 따라 새로운 화폐 발행이 가시권에 들어섰다. 그러나 정부가 구체적인 시행시점에 대해 여전히 유보적인 입장인데다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고액권 발행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 새 화폐 발행 방침이 결정되기까지는 적지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 급진전되는 고액권 논의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3일 인터넷 국정신문인 '국정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제기되고 있는 화폐제도 개편 방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광림 재경부 차관도 이날 P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화폐 단위를 낮추는 디노미네이션은 명분에 비해 실익이 적어 반대하지만 고액권 또는 위폐방지를 위한 신권 발행에는 찬성한다"고 말했다. 12일에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회 의장이 "정치인들이 검은 자금만 주고 받지 않으면 10만원권 화폐가 발행돼 수백억원이 절약되고 침체돼 있는 내수와 소비 진작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고액권 발행에 적극적인 찬성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박승 총재가 제시한 '디노미네이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해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 김 부총리는 "디노미네이션은 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줄 소지가 있다"며 "유럽연합이 통합화폐를 발행한 이후 물가가 올랐던 것처럼 국내 물가도 상승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 만만치않은 반대론 고액권 발행이 정부와 여당의 찬성을 얻음으로써 앞으로 발행될 새로운 고액권이 어떤 형태를 띨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은은 고액권의 종류로 5만원권과 10만원권 등 두 종류가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해 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2만원권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화폐종류가 많아지면 오히려 일상적인 상거래에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게 한은의 내부 의견이다. 그러나 고액권 발행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새로운 화폐를 발행할 경우 신권을 찍고 금융회사의 현금지급기(ATM)나 자판기의 '액면인식 센서' 등을 바꾸는데 엄청난 비용이 드는 반면 긍정적인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경실련 정책위원)는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고액권을 발행하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소비에 대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빼곤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최근처럼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고액권 발행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시행시점에 대해서는 정부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 있다. 김 부총리도 "고액권 발행은 투명하고 부패없는 사회로 가기위한 정치ㆍ사회적 합의가 다져지는 시점이나 그 후에 하는 것이 좋다"고 단서를 달아 빠른 시일내에 고액권 발행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 고액권엔 누가 등장하나 새로 발행될 화폐에 등장할 '모델'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 △조선 실학자 정약용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화가 담징과 김홍도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기존 화폐가 조선시대 이(李)씨 남성들(세종대왕, 이황, 이이, 이순신)로만 채워져 있다는 점을 고려해 여성도 물망에 올라있는 상태. 현재까지 거론된 인물로는 유관순 신사임당 허난설헌 이태영(한국 최초 여성판사) 등이 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