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금리등 거시경제 변수의 변화를 틈타 투자기회를 포착하는 글로벌 매크로 헤지펀드(global macro hedge fund)가 한국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 98년초였다. 당시에도 투자포인트는 환율이었다. 97년 하반기 1천원을 밑돌던 원달러 환율이 한국의 IMF구제금융 신청 이후 1천8백원까지 치솟았다. 그 이전까지 "팔자"로 일관했던 외국인이 대거 순매수로 돌아섰다. 연기금.뮤추얼펀드 뿐만 아니라 환차익을 겨냥한 헤지펀드까지 가세했다. 98년 1~2월 두달간 외국인 순매수 금액은 무려 4조원에 달했다. 이후 환율이 안정적인 하락세로 돌아서자 외국인 매수세가 급격히 둔화됐고 그해 5월부터 8월에 걸쳐 차익매물이 나오기도 했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들은 "최근 외국인 주식 매수세를 지난 98년 초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환율 하락 압력과 헤지펀드의 가세라는 점은 닮은 꼴"이라고 말했다. ◆헤지펀드의 대량 주문 올들어 외국인 매매패턴에서 과거와 다른 점은 여러 계좌에서 주문이 나오지 않고 소수 몇몇 계좌에서 대량 주문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단위가 1천억원이 넘는 주문도 적지 않다. 방식도 종목별 지정이 아니라 유동물량이 많아 거래하기 쉬운 대형주 4∼5개 종목으로 구성된 바스켓(현물주식 묶음) 매매로 이뤄진다. 실제로 올들어 지난 12일까지 외국인 순매수(금액) 상위종목을 보면 삼성전자 SK텔레콤 국민은행 KT 포스코 LG전자 등 시가총액 상위종목의 순서와 그대로 일치한다. 모건스탠리증권 관계자는 "아시아 지역을 무대로 삼는 리지널펀드(regional fund)가 아니라 글로벌 펀드와 헤지펀드 자금이 대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가운데서도 절대수익 추구형 펀드가 아니라 거시경제의 변화 등을 이용해 과감한 베팅에 나서는 글로벌 매크로 헤지펀드가 주류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퀀텀펀드가 대표적인 경우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조지 소로스가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글로벌 헤지펀드 자금이 상당액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환차익 겨냥 헤지펀드의 공격적인 주식매수는 주가상승에 따른 자본차익뿐만 아니라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1년간 유로 엔 등은 미국 달러화에 비해 절상돼 왔지만 원화는 1천2백원대(작년말)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작년 9월 이후 유로 및 엔화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했지만 원화는 고공비행을 지속중이다. 수출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인위적인 환율방어 탓이었다. 그러나 국내외 전문가들은 달러약세 기조가 지속될 것이며 원화환율도 결국 대세를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춘수 대한투신 주식운용본부장은 "총선이 끝나고 내수경기가 회복될 조짐이 보이면 정부가 환율방어에서 손을 뗄 것이란 관측이 많다"며 "헤지펀드들이 이같은 흐름을 읽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환율이 1천2백원에서 1천1백원으로 떨어지면 주식을 산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가만히 앉아서 8.3%의 수익을 남기는 셈이다. 물론 헤지펀드들이 환차익만 겨냥한 것은 아니다. 이원기 메릴린치 전무는 "달러약세와 저평가된 증시를 찾아 글로벌펀드 자금이 이머징마켓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면서 "헤지펀드들이 뮤추얼펀드의 자금흐름에 편승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