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권이 발행되면 자금 출처가 모두 드러나는 것 아닌가요?" 고액권 발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일반 시민들 사이에 갖가지 억측이 퍼져가고 있다. 새로운 화폐가 등장하면 자금 출처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는 얘기에서부터 물가상승(화폐가치 하락)에 대비해 집이나 금 등 실물자산을 서둘러 사야 한다는 조언까지 다양한 루머가 확산되고 있는 것. 김두경 한국은행 발권국장은 이에 대해 "강제적으로 이뤄진 과거 '화폐개혁'과 지금의 고액권 발행 논의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기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현재 구상중인 화폐 개편 방안은 신ㆍ구 화폐를 함께 사용하면서 충분한 교환기간을 거치게 되므로 금융 활동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것. 예금인출이 금지되는 등의 사유재산권 침해조치도 고려대상이 아니다. 김 국장은 "유럽은 전혀 새로운 화폐인 유로화를 도입하면서도 아무런 혼란을 겪지 않았다"며 "미래에 어떤 형태의 화폐 선진화 조치가 이뤄지더라도 일상 경제생활이나 개인 재산에 피해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6ㆍ25동란 와중인 1950년과 53년 및 62년 등 세차례에 걸쳐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이중 53년과 62년에는 화폐단위를 일정비율로 떨어뜨리는 디노미네이션이 병행됐다. 50년 8월의 화폐개혁은 전쟁 중 북한군이 탈취한 돈의 통용을 막기 위해 취해진 조치. 이에 반해 53년 2월에 실시된 화폐개혁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 1백대 1의 액면절하 조치와 함께 예금의 인출과 담보제공이 일정 기간 금지됐다. 62년 6월 통화개혁은 과잉 유동성 흡수를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와 장롱속 현금이나 검은 돈의 산업자금화가 목적이었다. 기존의 화폐단위인 '환'이 '원'으로 바뀌었고 10대 1의 디노미네이션도 이뤄졌다. 또 구 화폐와 수표ㆍ어음은 금융기관 예치가 의무화되고 이 중 일부는 인출이 봉쇄됐다. 일반인들이 화폐 선진화 논의를 걱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