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빛바랜' 일선검사의 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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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말 못하겠네요."
지난 12일 오후5시. 채동욱 서울지검 특수2부 부장검사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자신의 사무실 밖에 서 있던 5∼6명의 기자들에게 이 한마디를 툭 던지고 방 안으로 사라졌다.기자들은 대우건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정치인이 누구인지 확인키 위해 오후 2시부터 기다리던 참이었다.평소 3시께면 수사 책임자인 신상규 3차장과 회의가 끝났으나 이날은 무려 2시간 가까이 더 걸렸다.채 부장의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미뤄볼 때 신 차장과 적잖은 논쟁이 있었음을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실 채 부장의 반발(?)은 이미 오전 공보관 브리핑에서 예견됐었다.평소보다 30분 늦게 시작된 브리핑에서 신 차장은 "대우건설 비자금과 관련해 불과 하루만에 누구에게 몇백억원의 돈이 건네졌다는 식의 기사가 나오고 있어 (지검으로선) 상당히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며 대우건설 수사중 대선자금 관련 부분을 대검으로 넘기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대우건설과 관련된 안희정씨의 불법자금 수수 등 진상은 같은 시각 대검 중수부의 입을 통해서야 발표됐다.지검이 조사한 결과를 그대로 발표했던 게 겸연쩍었던지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발표 중간에 "정대철 의원이 대우건설에 연루된 건 우리도 몰랐다. 지검이 기가 막히게 잘했다.개가다"며 칭찬을 아끼지않았다.
업무의 일관성이나 전문성을 감안한다면 대우건설 수사에서 대선 불법자금과 관련된 부분을 대검이 맡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썬앤문 감세청탁 늑장 수사 등으로 비판을 받았던 지검으로서는 이번 대우건설 사건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 불명예를 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이 분명하다.
채동욱 부장검사가 선배 검사와 긴 회의 후 기자들한테 브리핑을 못할 정도로 피곤함을 느꼈던 것은 검찰내 이런 시각차 때문이 아니었을까.
임상택 사회부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