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꿈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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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지고.' 황진이 시 김성태 곡 '꿈길에서'는 그리운 이를 꿈에서조차 볼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간절히 원하면 꿈이라도 꾸게 된다는 말과 달리 보고 싶은 사람은 꿈에 좀체 안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앞으론 작정만 하면 꿈 속에서 짝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다.
잠자기 전에 원하는 내용을 입력하면 그대로 꿈꾸게 해주는 기계가 나왔다는 것이다.
일본 완구업체 다카라사에서 만든 '유메미 코보'(夢見工房)가 그것으로 5월 말 출시를 앞두고 최종 시험 중인데 주제는 얼추 맞지만 줄거리가 간혹 틀려 보완중이라고 전한다.
꿈이란 옅은 잠의 일종인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에서 일어난다는 게 통설이다.
렘수면이란 근육은 이완돼 있지만 뇌와 안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렘수면을 일으키는 전기적 흥분이 대뇌피질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기억의 저장고인 해마를 자극해 꿈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꿈의 재료는 체험과 기억 등이지만 수면 중 받는 체내외 자극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방광이 가득 차면 화장실에 가는 꿈을 꾸거나 자는 사람 팔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비 맞는 꿈을 꾼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현실과 영 딴판인 엉뚱한 내용으로 이뤄지는데 이는 깨어 있을 때의 심적 메커니즘과 같은 방어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탓이라고 여겨진다.
꿈기계가 생기면 연인과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거나 돼지꿈을 마음대로 꿀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꿈에 기대는 건 그 속에서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나거나 경험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가상의 꿈을 통해 그리움을 해소하거나 현실의 고단함을 잊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꿈까지 기계에 맡기는 건 서글프고 씁쓸하다. 게다가 의도된 꿈에 매달리면 현실을 이겨내는 힘을 잃을 수도 있다.
'옛 영광에 취하지도 고통에 갇히지도 말라'고 하거니와 앞으로 나아가자면 잊을 건 잊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