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6ㆍ23 선언으로 시작된 북방정책은 소련 중국 동유럽 및 북한을 대상으로 한 외교정책이었다. 이들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고 경제협력으로 국가이익을 꾀하자는 것이었는데, 90년대 들어 본격적인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결실을 보게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 부처간의 정책혼선과 협상에서의 저자세 등으로 갖가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외교는 항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상대국가가 있는데다 시대상황과 국력에 따른 변수가 부지기수로 많아 고도의 정책판단을 필요로 한다. 지정학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중립외교 등거리외교 등을 표방해 왔으며 한ㆍ일협정비준 당시에는 굴욕외교라 해서 사회적인 거센 저항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외교란 자국의 이익과 위상을 최대한 확보하는게 목적이어서 오늘날에는 국가의 역량을 집중하는 총력외교의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미국은 해외투자를 장려하는 '달러외교'를 펼치면서 자국 상품의 해외진출을 촉진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높여가고 있다. 대만의 탄성외교는 탄력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의 고립을 피하는 정책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외교통상부 일부 직원들의 대통령에 대한 폄하 발언이 도화선이 돼 급기야 장관이 경질됐다. 그러나 근본적인 경질이유는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이 밝혔듯 참여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자주적 외교정책의 기본정신과 방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자주외교와 동맹외교의 노선차이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자주'와 '동맹'을 언급하는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점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이 둘을 적절히 혼합해서 정책을 수립하는게 일반적이어서다. 무엇이 국익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극히 신중해야할 관리들이 자주외교파니 의존외교파니 해서 편가르기를 하는 것은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미국은 우리가 같이 가야할 나라이기에 더욱 그렇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