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이요, 아직 멀었습니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투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규제혁파가 필수인데 규제개혁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기업들이 입만 열만 '규제개혁을 해달라'고 목청을 높이기 때문에 엄살을 떠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대한상공회의소가 작년말 내놓은 '2003년도 규제개혁 평가와 과제' 보고서를 보면 정부의 규제완화 작업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정부가 줄기차게 규제완화를 떠들어댔지만 실제 규제개혁의 성과는 양ㆍ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미흡하다'는게 요지다. 상의에 따르면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공정거래위원회 등 7개 주요 경제부처의 규제건수는 지난 2002년 말 3천2백38건보다 1백37건(4.2%) 늘어난 3천3백75건으로 집계돼 4년째 늘어났다. 부처별로는 재경부가 4건 줄었을 뿐, 건교부(50건), 금감위(34건), 노동부(28건), 환경부(20건) 등 다른 부처는 1년 전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지난 98년8월 3천6백68건이던 경제부처 규제는 99년에는 2천7백36건으로 25.4% 줄었으나 △2000년 2.6% △2001년 7.4% △2002년 7.5% 등 해마다 늘어나 오히려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경제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규제가 계속 생겨나는 반면 시장경제 발전을 막는 낡은 규제는 적기에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상의는 분석했다. 특히 투자, 입지, 금융 등 기업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규제들이 대부분 존속돼 질적인 측면에서의 규제개혁이 크게 미흡하다는 것이다. 최근 노사관계 로드맵이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등 친노(親勞)적인 정책을 담은 것도 기업의 규제 체감도를 더욱 떨어뜨릴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가 펴낸 국가별 노동규제 및 기업활동규제 경쟁력 순위에서 갈수록 뒤로 밀리고 있다.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각종 규제야말로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독소조항"이라며 "시장경제 효율을 떨어뜨리는 모든 규제는 일자리 창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만큼 정부가 노조 등 이해관계자를 설득시켜 기업투자 관련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의는 규제개혁을 위한 정책대안으로 △규제일몰제 철저 시행 및 적용대상 확대 △규제폐지 공무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규제총량제의 조속한 도입 △규제개혁위원회의 권한 강화 등을 제시했다. 이현석 대한상의 상무는 "절차개선과 같은 지엽적인 부분보다는 투자활성화, 경쟁촉진, 기업의욕 제고와 같이 경제활력 제고에 규제개혁의 초점을 맞춰 규제개혁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