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홋카이도는 그야말로 '눈의 나라'다. 홑청을 뜯어 곱게 튼 새하얀 솜을 겹으로 깔아 놓은 듯 두툼하다. 무릎을 덮고, 허리춤을 넘는다. 길 양편 노랗고 검은 사선의 화살표 표지가 아니라면 어디까지가 차도인지도 분간 못할 정도다. 눈은 투명한 햇살을 받아 반짝 반짝 빛난다. 제 고도를 잡은 비행기 창 밖에 펼쳐진 구름세상처럼 눈부시다. 그 눈부신 눈 속엔 한 괴물이 웅크리고 있다. 괴물의 정체는 '소통의 단절'이다.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홋카이도엔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겨우내 눈으로 된 높은 울타리가 집집이 쳐져 있느니 그럴만도 하다. 눈은 그러나 새 소통의 연결끈으로서 사람들과 화해를 청한다. 갖가지 모양으로 제 모습을 뽐내며 사람들을 불러모아, 한겨울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준다. 바로 떠들썩한 축제의 형식을 빌려서다. 홋카이도의 눈과 얼음축제가 2월초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오비히로의 얼음축제와 가미가와ㆍ소운쿄ㆍ이시카리호반의 얼음축제에 이어 삿포로 눈축제(2월5∼11일)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세계 최대의 설상으로 유명한 아사히가와 겨울축제(2월6∼11일),오호츠크 유빙축제(2월9∼12일), 몬베쓰 유빙축제(2월9∼14일)도 아주 큰 목소리를 낸다.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은 삿포로 눈축제다. 규모와 볼거리에 접근성까지, 삿포로 눈축제가 으뜸으로 꼽힌다. 삿포로의 관문격인 신지토세공항에서 삿포로, 그리고 오타루로 이어지는 눈축제 길을 따라가 보자. 신지토세공항에서 국도를 따라 삿포로쪽으로 50여분 달리면 시코쓰코호를 만난다. 시코쓰코호는 일본 최북단의 얼지 않는 호수로 유명하다. 호수 주변이 마라톤 풀코스 길이에 맞먹을 정도로 크다. 지토세강을 따라 연어가 회귀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곳 호숫가에서도 2월초 얼음축제가 열린다. 시골마을 주민끼리 하는 축제처럼 작고 소박하지만 본격적인 눈축제를 보기에 앞서 눈을 적응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호수의 푸른 물과 그 물을 머금은 듯 하늘색을 띠는 많은 얼음작품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다음은 삿포로 눈축제. 일본 최대의 축제다.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독일 뮌헨의 옥토버 페스트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로도 꼽힌다. 올해로 55회째. 삿포로에서 가장 번화한 오도리공원과 서울 명동거리격인 스스키노, 자위대 주둔지인 마코마나이 등지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이어진다. TV타워와 홋카이도 민속자료관 사이, 길이 1.5㎞, 최대 폭 1백5m의 오도리공원을 가득 메운 초대형 눈작품들이 '드림랜드'를 방불케 한다. 올해엔 축제의 마스코트인 눈의 요정, 유키와 스논이 반갑게 마중한다. 홋카이도 초등학생들의 작품에서 디자인한 얼음조각 '무지개 원숭이의 성', 독일의 '하노버 시청', 아테네거리의 거대한 '파르테논신전', '2004 아테네 올림픽 마스코트상', '하코다테성'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초저녁 조명이 들어올 때 TV타워에서 내려다 보면 그 감동이 더해진다. 이들 대형 눈작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상이 안간다. 눈의 양이 5t트럭으로 7천대분이나 된다고 한다. 5회 때부터 참여한 자위대가 트럭으로 외곽의 눈을 실어 나르고, 뼈대를 세운 뒤 눈을 붙이고 깎아 만든다고 한다. 마코마나이쪽도 화려하다. 인도의 '타지마할', 어린이 만화영화 도라에몽 캐릭터상 등 대형작품을 볼 수 있다. 스스키노골목은 크고 작은 얼음작품이 모여 있다. 살아 있는 게와 오징어 연어 등을 넣고 얼려 만든 작품들이 신기하다. 이들 지역 외에도 시내 곳곳에서 눈을 즐길수 있다. 아카렌가(붉은 벽돌)란 애칭으로 불리는 홋카이도청 구청사가 대표적이다. 올해도 청사 앞을 가득 메운 앙증맞은 눈사람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타루에는 삿포로와는 분위기가 좀 다른 눈축제가 열린다. '오타루 유키 아카리 노 미치'(오타루 눈과 촛불의 거리) 축제이다. 오타루는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까지 내로라했던 항구도시. 북쪽의 월가로도 불릴 만큼 번성했다. 당시의 은행과 창고건물로 지어진 중후한 석조건물들이 중심을 잡고 있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오타루만과 평행으로 난 오타루운하의 촛불등. 노란 불빛을 밝힌 수백개의 등이 점점이 떠 운하를 밝히고, 가스등이 졸린 듯 차츰 환해지면 축제의 하루가 절정을 맞는다. 운하 옆 쌓인 눈을 파고 그 속에 넣어둔 촛불도 뭔지 모를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내리지 않은 어스름에, 옛 영화를 간직한 건물과 먼 산의 실루엣을 배경으로 하늘하늘 피어나는 운하의 유등과 가스등, 운하옆 눈속 촛불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운하의 유등은 거리에도 피어난다. 좁은 골목에 가득한 눈을 밟아 다닐수 있도록 길을 내고, 옆에 쌓인 눈더미마다 구멍을 내 촛불을 밝혀두는 것. 그 분위기가 그렇게 낭만적일수 없다. 오타루는 오르골(뚜껑을 열면 음악소리가 나는 상자)로도 유명하다. 증기시계가 있는 메르헨교차로에 일본 최대의 오르골 전문점인 오타루 오르골당이 있다. 메르헨교차로에서 이어지는 사카이마치거리에는 유리공예점들도 많다. 가스불로 유리를 녹여 조용히 유리작품을 완성해 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오타루의 분위기와 꼭 닮았다. ----------------------------------------------------------------- < 여행수첩 > 홋카이도는 혼슈, 규슈, 시코쿠와 함께 일본을 이루는 4개의 주요 섬중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경상북도를 제외한 남한 크기의 땅에 6백만명이 살고 있다. 원래 원주민인 아이누족이 살던 땅으로 에조치라 불렸었다. 메이지유신시대부터 일본인이 이주해 개척했다. 6개의 국립공원과 12개의 도립공원 등 철마다 독특한 색깔을 드러내는 때묻지 않은 자연경관이 자랑이다. 일본인만해도 한해 6백만명이 찾고 있으며, 한국인 관광객도 2만명을 헤아린다. 여름철 전세기 상품을 많이 이용한다. 홋카이도의 겨울 별미는 게요리. 일본사람들이 장맛에서 최고로 치는 털게와 대게, 왕게 등 말그대로 '게천지'다. 찜, 버터구이, 회 등 요리가짓수도 많다. 서울에서는 왕돌잠(www.biocrab.co.kr)을 찾으면 그 맛에 더해 한국식으로 개발한 메뉴까지 즐길수 있다. 삿포로의 '라멘'도 유명하다. 된장(미소)라면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스스키노거리에 라면전문점 골목이 있다. 대한항공이 인천~삿포로(신치토세공항) 노선에 단독 취항하고 있다. 매주 일ㆍ월ㆍ수ㆍ목ㆍ금요일 5회 직항편을 띄운다. 비행시간은 2시간30분. 롯데관광(02-399-2302)은 삿포로 눈축제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다. 2월5ㆍ6ㆍ8ㆍ9일 각 3박4일 일정으로 출발한다. 삿포로와 오타루에서 눈축제를 즐기고, 도야호의 설경도 맛본다. 노보리베츠에서의 온천욕 시간도 두었다. 1백49만~1백59만원.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