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오래 전에 잃어버리고만 어떤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향수, 또 그 시절을 살아온 이 땅의 딸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중견작가 이순원씨(47)가 신작 장편소설 '스물셋 그리고 마흔여섯'(이가서)을 펴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스물셋의 딸과 마흔여섯의 어머니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과정 속에서 세대간 벽을 허물고 융화되는 과정을 그렸다. 작품 속의 딸 윤희와 어머니 순영은 각각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비밀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 윤희는 고교 3년 때 사촌오빠 기혁의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시킨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시련을 극복하지만 어머니에게도 상대가 사촌오빠라는 사실만큼은 끝내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는 뒤늦게 기혁과 윤희의 관계를 눈치챈다. 어머니 순영의 비밀은 첫사랑의 남자를 20년 만에 재회했다가 그에게 1억원을 가족 몰래줘 버린 것. 윤희는 폐암수술을 받은 어머니의 병실에서 첫사랑의 남자와 통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다. 작가는 "비밀을 공유한 모녀가 여성 특유의 친밀성을 통해 세대간 소통을 이뤄내고 마침내 하나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근친상간과 같은 사회적 금기를 다룬데 대해선 "어느 시대나 금기는 있었다. 이종사촌에 대한 금기만 해도 나라마다 다르다. 굳이 금기를 등장시킨 것은 세대간 이해의 도를 넘어서려는 극적 장치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올해 안으로 1970∼80년대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을 내놓을 계획이다. 문학평론가 박진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들 각자는 서로에게 교통이 불가능한 고립된 우주들이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더욱 그리워진 완전한 소통과 통합의 세계를 이순원은 어머니와 딸의 이상화된 관계를 통해 우리 앞에 그려 보인다"고 평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