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보수ㆍ진보 융합이 시급하다..安國臣 <중앙대 교수ㆍ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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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제1원리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에지워스의 말이다.
영국 보수당의 마이클 하워드 당수가 연초에 개인 명의로 신문에 이색적인 광고를 실어 화제가 됐다.'나는 믿는다'라는 16개항의 보수주의 강령이 그 것이다.그 중에 첫째가 다름 아닌 경제학의 제1원리이다."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건강과 부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머지 15개항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경제학이 가르치는 시장경제의 논리가 녹아 있는 강령들이다.
진정한 보수주의가 무엇인가를 이렇게 쉽게 풀고 포괄적으로 정리해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근래에 이념갈등이 커졌다고 흔히들 말한다.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지 어언 15년이 지난 우리나라다.
우리 사회는 다른 어느 사회보다 역동적이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압축발전한 것처럼 이제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도 압축승화할 때가 됐다.
세계는 일찍이 1990년대부터 탈이념의 시대로 접어들지 않았는가? 이 점에서 하워드 당수의 보수주의 강령은 이념갈등을 푸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준다.
우리나라의 보수층은 16개항에 대해 다 수긍할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주의 강령'으로 삼아도 될 성 싶다.
문제는 보수층이 믿는 것과 행동해 온 것이 딴판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그들이 자유로울 때만이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라는 강령을 보자.마땅하고 옳은 강령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 낙오된 빈곤층에게는 굶주리는 자유 외에 뾰족한 자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아는 서구 선진국의 보수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빈곤층을 배려하고, 누리는 만큼 '체제유지'의 비용을 흔연히 부담한다.
우리나라의 보수층에서는 이런 덕목을 찾기 어렵다.
진보층은 우선 '우리나라 진보주의 강령'을 차분히 만들어 보기를 권한다.
골수 진보세력은 경제학의 제1원리부터 마뜩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인간이 그렇게 속물적이지 않고 그래서도 안된다.
자기와 가족 못지않게 이웃과 사회도 위해야 할 것 아닌가?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사심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은 성직자 정도로 극소수이다.
민주화와 환경, 사회정의 등 각종 대의를 위해 운동하는 사람들도 대다수가 나중에 명예나 권력이나 보상을 바란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진보층이 보수층보다 덜 이기적인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으레 주어진 여건 하에 자기 이익을 좇고 '돈벼락'을 맞으면 흐물거리게 마련이라는 겸허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여건을 마련해 주고 돈벼락이 생기지 않게 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관용과 배려가 자리잡을 수 있다.
하워드 당수의 보수주의 강령은 대부분이 소시민적이고 시야가 좁다.
진보와 개혁의 가치에 관해선 말이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서 진보주의 강령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야가 넓고 인류의 진보와 사회의 개혁을 표방하는 것으로 말하면 일찍이 사회주의 만한 것이 없었다.
이런 사회주의가 실패한 현실을 거울 삼는 예지가 필요하다.
세계화시대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보편적인 가치이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면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
시장경제면에서는 천민자본주의 요소가 아직 많지만 절대빈곤을 타파하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갖추었다.
천민적 요소가 많다고 해서 보수(保守)할 것이 없다고 폄하하는 것은 잘못이다.
합리적인 진보층이 제시하는 진보주의 강령은 하워드 당수가 제시한 보수주의 강령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과 프로그램에 관해선 많이 다를 수 있다.
중지를 모아야 할 부분이다.
토론공화국이라는 이 정부 하에서 '우리나라 보수주의 강령'과 '우리나라 진보주의 강령'을 놓고 국민 대토론회가 있기를 바란다.
지금은 이념의 융합과 실용주의가 필요한 때라고 나는 믿는다.
ksah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