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출신 김종창 기업은행장의 금융통화위원 내정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은행 내부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은행연합회 추천 형식을 빌려 재경부 관료출신이 자리를 차지하는 기존 관행이 되풀이됐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후보자 자질이 아닌 '출신성분'을 갖고 반대하는데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한은의 반대의사 전달 방식은 더욱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임금 등 근로조건 개선에 충실해야 할 노조가 '집무실 점거농성'까지 벌이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반면,'독립성'문제에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할 고위간부들은 노조 뒤에 숨어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재경부 눈치보기'는 최근 불거진 '외자관리원(가칭)'문제에서 보다 극명하게 드러났다.지난 20일자 본지 가판에서 한은이 재경부의 '한국투자공사(KIC)' 설립에 대응해 별도 기구인 '외자관리원'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가자 담당국장과 부총재보는 "단 한 번도 검토한 바가 없다"며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심지어는 "직원들끼리 농담삼아 오간 얘기일 뿐이다. 검토한 적이 있으면 내 자리를 걸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배포된 보도해명자료에는 은근슬쩍 "외자관리원 신설방안은 중장기적 검토대상으로 거론된 바 있다"는 문구가 삽입됐다. 하루전까지만 해도 직원들의 '농담'이었던 아이디어가 어떻게 중장기 검토대상에 포함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물론 한 줄도 없었다. 지난해 말 한은은 본관 앞마당 한 켠에 '새출발 기념비'를 설치했다. 한은법이 개정돼 한은의 독립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자축의 의미를 담은 상징물이다.하지만 아직까지 한은의 정책추진 과정이나 인사측면에선 '독립'의 기운을 느끼기 힘들다."한은의 독립을 가로막는 것은 재경부가 아니라 한은 집행부의 소극성"이란 쓴소리가 괜한 푸념만은 아닌 것 같다. 안재석 경제부 정책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