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제발 손이 하나뿐인 외팔이 경제학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경제학자들의 말이 모호하다는 것을 빗댄 전설적인 농담이다. 경제학자들에게 뭘 물어보면 대개가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 이렇고,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 저렇고…"라는 식으로 얘기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경제학자들을 모아서 토론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경제학자들은 상충되는 의견만 제시한다는 비유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경제학자들에게 1백개의 질문을 던지면 3천개의 답이 나올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유명한 버나드 쇼는 "모든 경제학자들을 드러눕혀 이어본다면,그들은 결론이라는 곳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얼마 전 4백11명의 한국 경제·경영학자들이 성명을 발표했다. 리더십 실종,성장동력 상실 등 한 마디로 나라 경제가 흥망의 기로에 있다는 게 골자다. 지난 시절 일부 경제학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한 적이 있지만 집단으로 이렇게 나선 것은 처음인 듯싶다. 선진국에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들이 그런다고도 하지만 도저히 자신들의 영역에만 머무를 수 없을 정도로 걱정이 돼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그 절박한 심정이 똑 같을 리 없다. 정책결정자들의 눈에는 결론도 없고 다른 의견만 쏟아내는 것으로 비춰지는 경제학자들이 성명을 낸 것 자체가,지금까지의 농담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분명해야 할 정책결정자들이 분명치 않다'고 경제학자들이 오히려 '분명한' 주장을 하고 나섰으니 예사로운 일일 수 없다. 따지고 보면 경제학자들에 대한 정책결정자들의 평가는 억울한 것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떠한 선택에도 대가가 있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적인 원리이고 보면 동전의 다른 면도 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경제학자라고 할 것이다. 자연과학자들도 논쟁을 벌이는 판에 경제학자들만 유달리 의견이 다르다고 할 근거도 없다. 과학적 판단(실증적 분석)뿐만 아니라 가치관(규범적 주장)의 차이까지 감안하면 의견이 다른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어쨌든 그런 경제·경영학자들이 자신들의 전문 영역이라고 할 실증적인 분석 차원을 넘어서 규범적인 측면에서까지 의견을 같이한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의견을 같이하는 부분에서조차 정책결정자들이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까닭이라고 한다면 크게 틀린 것일까.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도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반복되고,경제학자들의 눈에는 물어보나마나 한 것을 놓고 토론만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라고 한다면 크게 벗어난 것일까. 그러고 보니 경제학자 케인스의 말이 생각난다. "어떤 지적 영향력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는다고 자처하는 실용주의자들조차 사실은 '어느 죽은 경제학자'의 정신적 노예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권력자들은 과거 어느 학자들이 써놓은 낙서장으로부터 그들의 광기(狂氣)를 흡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말도 그는 덧붙였다. 어느 시절에 읽었던 책이나 인상 깊었던 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솔직히 얼마나 될까. 그래서 두루두루 많이 듣거나 봐야 하고,한때 가졌던 생각도 바꾸거나 버릴 줄 알아야 하는지 모른다. '죽은 경제학자들'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살아있는 경제학자들'이다. 그것도 한두명도 아니고 며칠 만에 4백11명이 동참할 정도라면 성명서의 구절구절마다 경청할 만하지 않겠는가.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